그런데 작곡가 바그너는 이 초연 현장에 없었습니다. 대신 피아노 명인이자 작곡가였던 프란츠 리스트가 공연을 지휘했죠. 바그너는 전해 독일 시민혁명의 와중에 당국의 수배를 받아 해외로 도피한 상태였습니다. 바그너의 맹렬한 지지자였던 리스트는 공연 날짜에도 의미를 담았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재상으로 재직했던 천재 괴테의 101번째 생일을 맞아 이 곡을 선보인 것입니다.
당시 리스트는 마리다구 백작 부인과의 사이에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습니다. 결혼행진곡 장면을 지휘하면서 그는 자신의 아이들도 그렇게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결혼식을 올리기를 소망했을까요? 그러지는 않았을 듯싶습니다. ‘로엔그린’의 결혼은 파국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신랑인 백조의 기사는 신부 엘자가 ‘금기’인 자신의 이름을 묻자 떠나버리고, 엘자는 충격을 받아 죽어버립니다. 이런 내용을 보면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이 곡이 결혼 축하의 순간에 연주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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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와 코지마의 후손들은 오늘날 바그너 극을 공연하는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올해 바이로이트 축제는 지난달 25일 개막했고 내일 ‘발퀴레’를 끝으로 폐막합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