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을 기리며…
허영만 화백
그는 한마디로 ‘된장 냄새 나는 사람’이다. 소위 재벌들을 몇 번 만나봤는데 그런 이미지가 전혀 아니었다. 함께 여행을 다니고 술도 좋아해서 나와 잘 맞았다. 구 회장은 수더분하고 남한테 배려를 잘하며 형편이 좋지 않은 걸 보면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한번은 음식값을 매번 회장님이 내니까 미안해져서 내가 중간에 계산을 하고 온 적이 있었다. 구 회장은 ‘어디 갔다 왔냐, 얼마나 나왔냐’고 묻더니 매출 전표를 그 자리에서 찢었다. 구 회장은 ‘허 화백, 돈 낼 생각 마라. 그럼 내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정이 많은 분이지만 원칙에도 충실했다. 30년간 단 한 차례도 늦은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20분 이상 먼저 나와 기다렸다. 한 번은 일본 도쿄에서 각자 일정이 있었는데 현지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내가 숙소에서 깜빡 잠이 들어 결국 30분 지각을 했다. 그때만큼은 평소 모습과 달랐다. 구 회장은 식사도 안 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크게 질책했다. 그는 “샐러리맨들은 10분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다. 왜 30분씩이나 늦게 오냐”는 게 요지였다. 나는 그저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구 회장의 와병 소식을 듣고 19일 저녁에 병문안을 갔다. 구 회장은 의식이 없었다. 병문안을 안 갔더라면 참 섭섭할 뻔했다.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는데 기가 팍 꺾인 모습이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남은 사람들이 보고 싶단 생각이 들면 그분은 제대로 산 분이다. 나는 아마도 회장님이 굉장히 보고 싶을 것 같다.
허영만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