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바보’는 가고 ‘빠미니스트’가 온다” “페미니스트 엄마가 초딩 아들에게 일러주는 젠더 교육”…. 최근 출간되는 페미니즘 책들은 이처럼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고발을 넘어 남성의 변화를 촉구하거나 청소년 대상 젠더 교육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미디어일다 제공
요즘 신간 목록을 보면 올해 출판계는 그야말로 페미니즘 서적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페미니즘 서적 출간이 2015년과 비교해 3배 이상 늘어났다. 인터넷서점 예스24 관계자도 “최근 3년 동안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해마다 3배가량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바보냐, 지 빤스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게?…권력이 폭력으로 작동하는 것은 일상에서부터 무의식에 각인된 결과야.”
양말과 속옷을 찾을 때도 툭하면 아내를 찾는 남성들의 일상적 행태를 신랄하게 비난한 ‘아빠 페미니즘’(책구경)은 이른바 ‘빠미니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진정한 딸 사랑은 딸이 살아갈 세상의 처참한 현실을 직시하고 분노하는 ‘빠미니즘’에서 출발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페미니즘 서적들은 이렇게 여성의 고발이나 고백에서 멈추지 않는다. 남성 의식과 행동 변화를 직접적으로 주문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특히 남성 저자가 같은 남성을 향해 젠더 문제를 제기하는 책들이 잇달아 출간됐다.
영국 예술가 그레이슨 페리가 쓴 ‘남자는 불편해’(원더박스)도 강인함, 극기 등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남성성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관용, 융통성 등 새로운 남성성의 모색을 강조한다. 고교 국어교사가 ‘남페미’임을 선언한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생각의힘) 역시 여성만큼 남성도 자유롭게 해주는 페미니즘을 받아들이자고 ‘동료 남성’에게 외친다. 담당 편집자 한의영 씨는 “실제 사회 변화를 위해선 남성이 달라져야 하는데 정작 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 많지 않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사회 전반에 번진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의 효과적인 성교육 부재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젠더교육 서적의 출간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다산에듀)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미디어일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당황하지…’는 예스24 종합베스트셀러 12위까지 올랐다. 많은 부모들이 고민하던 아들 성교육 문제를 명료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대에게 성의식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제시하려는 ‘나의 첫 젠더 수업’(창비)도 올해 예스24 청소년서적 베스트셀러 7위까지 올랐다. 전체적으로도 청소년 젠더서적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김태희 예스24 청소년부문 MD는 “문학이나 공부법 위주였던 베스트셀러 목록에 젠더교육 서적이 강세를 보이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페미니즘 교육이 어릴 때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진 게 원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