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박민우는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야구 국가대표팀의 핵심선수다.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이용규와 정근우의 뒤를 잇는 대표팀 차세대 테이블 세터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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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는 국제무대에서 다시 비상을 꿈꾸고 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승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은 세계야구계가 한국야구를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바꿔놓은 계기였다. 연이은 국제대회의 성과는 새 야구장의 신축과 신생구단의 창단 및 리그 확장, 전국적인 야구 붐을 일으켰다.
최근 국제대회에서의 부진은 정반대로 KBO리그와 한국야구의 위기론을 다시 고조시켰다. 이에 KBO는 선동열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을 임명하며 명예회복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선 감독은 국가대표팀의 혁신적인 세대교체를 이끌고 있다. 그 중심에는 차세대 국가대표 리드오프로 꼽히는 박민우(24·NC)가 있다.
한국야구가 국제적으로 승승장구할 때는 이승엽(은퇴) 등 중심타자의 무게감도 컸지만, 상대 배터리와 내야를 강하게 압박하는 테이블세터의 활약도 눈부셨다. 정근우(35·FA), 이용규(33·한화)는 수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몸이 부서져라 뛰고 또 뛰었다. 마운드 전력과 중심타선 모두 세대교체의 성공이 절실하지만, 야구대표팀 돌격대장으로 나설 리드오프의 비중은 큰 경기일수록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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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BC 대표팀 당시 박민우.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발목에 큰 부상이 있었지만, 포스트시즌을 뛰고 APBC까지 소화했다. 수술은 잘 됐나?
“발목이 많이 붓고 통증도 있었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APBC에서 꼭 우승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수술 후 약 5주가 지났다. 4주차부터 걷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재활에 더 속도를 내고 있다. 의사 선생님이 ‘이 수술을 받고 4주차에 걷는 것은 매우 드문 케이스다’며 놀라시기도 했다(웃음).”
-포스트시즌 때 상대팀 감독과 선수들이 NC의 경계대상 1호로 박민우를 꼽았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이 대단했다. 이제 지금까지와는 다른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이 기다리고 있다.
“프로선수로 항상 책임감과 역할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팀에서 이제 더 이상 막내가 아닌 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것 등이 느껴지는 변화다. 부담감보다는 더 많은 역할을 해내고 싶은 의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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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회에서 실수도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고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대표로 뛰어봤지만, 프로 데뷔 후 태극마크는 느낌이 남달랐다. APBC는 나이제한이 있는 대회였다. 칭찬도 받았지만, 고작 3경기를 뛰었을 뿐이다. 아직 큰 국제대회에서 내가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태극마크의 그 자긍심을 알았다는 점 같다. 그 소중한 느낌을 오랜 시간 간직하고 자랑스럽게 누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열심히 절실하게 노력해야 할 것 같다.”
NC 박민우. 스포츠동아DB
-소속팀에서도 존재감이 한해 한해 다르다. 올해 팀 전체가 더 큰 목표를 향해 똘똘 뭉친 느낌이다.
“NC와 함께 프로 1군에 데뷔했다는 자긍심이 매우 크다. 첫 시즌을 마치고 두 번째 시즌부터 매해 포스트시즌에 나가고 있다. 포스트시즌에서 더 많이 이기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꼭 매년 가을야구에 진출해야 한다는, 무조건 올라가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수술도 잘 됐고 재활도 순조롭다. 팀의 우승 도전도 있고, 아시안게임도 있는 해다. 개인적인 목표도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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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아깝게 골든글러브를 놓쳤다. 2018년은 박민우에게 어떤 한해로 기억될까?
“마산구장에서 마지막으로 치르는 시즌이다. 처음 프로선수가 된 홈구장이다. 멋지게 작별하고 싶다. 내년이면 새 구장으로 이사를 가지만, 그 전에 팀 전체가 첫 발을 내딛은 마산구장에서 팬들에게 큰 선물을 드리는 게 도리일 것 같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