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車 통상임금 1심]1심 재판부 판단 들여다보니
애초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판단할 거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었기에 관심은 신의칙 인정 여부에 쏠렸다. 관건은 기아차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1조 원가량의 금액이 회사 측에 막대한 타격을 야기하는 상황인지에 대한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기아차가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상당한 당기순이익을 거뒀고 1조∼16조 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해 오는 등 재정·경영 상태와 매출 실적이 나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아차 관계자는 “해외 판매까지 포함한 총 당기순이익의 40%를 한번에 비용으로 지출하는 게 큰 타격이 아닌 기업은 없다”고 반박했다. 기아차는 지난해 국내외를 합쳐 2조7546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인한 기아차의 중국 판매량 급감과 실적 악화를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기아차는 “납득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사드 보복 및 미국의 통상압력 등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으로 보이나 기아차가 명확한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상반기(1∼6월) 중국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55%나 줄었고, 전체 영업이익도 44%나 감소해 역대 최악이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공장 가동을 중단한 바 있는 현대자동차처럼 현지 공장이 멈춰 설 위험도 있다고 전했다. 기아차의 실적 악화가 연간 적자전환 등으로 보다 명확해진다면 2, 3심 판결 때는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기아차는 1심 판결 직후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원고와 피고로 갈린 기아차 노사가 그동안 원만하게 협조해왔다고 본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기아차 사측이 가장 크게 반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기아차 노사에 대해 “상호 신뢰를 기초로 노사합의를 이루어 자율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왔다”고 적시했다. 이런 가정을 근거로 “근로자들이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라는 결과 발생을 방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아차 노조는 올해까지 6년 연속 파업을 실시했다. 31일 판결 직후 기아차 노조는 판결 결과를 올해 임금·단체협상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상임금에 대해 만족할 만한 사측의 제안이 나오지 않으면 임금 및 단체협상의 마무리는 없다는 의미다.
:: 통상임금 ::
일정 조건에 해당하는 모든 근로자에게(일률적) 일정한 기간마다(정기적) 성과에 상관없이 사전에 확정해(고정적) 지급하는 임금. 기본급과 직책·직무·근속수당 등이 포함된다. 휴일·야근수당과 퇴직금을 계산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통상임금이 오르면 휴일·야근수당과 퇴직금도 오른다. 대법원은 2013년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
계약 등 법률관계에서 상대방을 배려해 성의 있게 행동해야 하는 원칙. 민법 제2조 1항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회사의 경영 사정이 나쁠 때 노조가 지나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이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다. ‘판사의 자의적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는 논란이 있다.
한우신 hanwshin@donga.com·권오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