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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탓하리

입력 | 2017-06-14 03:00:00

김상곤 교육부총리 후보자 박사논문 44곳 표절 판정… 석사논문 130곳 표절 의혹
인사 검증한 조국 민정수석… 석사논문 20곳 표절해놓고 표절한 자를 걸러낼 수 있나




송평인 논설위원

나는 1992년 한양대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의 자율과 상상의 사회학’이란 제목으로 석사논문을 썼다. 논문 쓰는 법에 대해 따로 배운 적은 없다. 대학 교양국어 시간에 ‘ibid’ 같은 기본적인 각주 관련 용어를 조금 배운 기억만 있다. 인용한 것을 인용했다고 써야 한다는 건 누가 가르쳐줘야 아는 게 아니라 공부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서울대 경영학과 박사학위 논문은 내가 석사논문을 쓰던 해에 제출됐다. 논문 제목은 ‘사회주의 기업의 자주관리적 노사관계 모형에 관한 연구: 페레스트로이카 하의 소련기업을 중심으로’이다. 이런 주제가 사회과학에나 어울리는 것이지, 과연 경영학과에 어울리는지 독자 여러분들이 생각해보시라고 긴 제목을 굳이 써봤다.

서울대는 “김 후보자는 박사논문에서 우리나라 문헌의 20곳, 일본 문헌의 24곳에서 출처 표시 없이 인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구부정행위가 아니라 연구부적절행위라고 규정하고 본조사도 하지 않고 예비조사로 끝내버렸다. 표절이지만 경미한 표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1992년 무렵 경영학 박사논문 작성 관례를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경영학 박사논문은 차라리 박사논문이 아니라고 말해라. 40여 곳을 인용 없이 베낀 뻔한 잘못을 판단하는 데 무슨 당시 관례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인가.


김 후보자의 1982년 석사논문에는 130곳의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대는 그의 석사논문은 아예 심사하지도 않았다. 표절을 검증하는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2006년 출범했기 때문에 2006년 이전 논문은 검증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라리 서울대 석사논문은 논문도 아니라고 말해라. 출처 없이 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규칙을 지키는 데 2006년 이전 양심이 따로 있고 2006년 이후 양심이 따로 있을 수 있나.

서울대는 김 후보자의 석사논문과는 달리 조국 민정수석의 석사논문은 1989년 통과된 것인데도 검증한 적이 있다. 서울대는 당시도 2006년 이전 것은 검증하지 않겠다고 2년여를 버티다가 자교(自校) 학위논문에는 사실상 시효 없는 검증을 하겠다고 방침을 정해 검증했다. 그것이 2015년 일이다. 그사이에 또 방침이 바뀌었나 보다.

조 수석의 석사논문 제목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법·형법 이론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 1917∼1938’이다. 김 후보자나 조 수석이나 소비에트에 관심이 많았고 표절 형태가 유사하다는 게 흥미롭다. 당시 서울대는 조 교수가 20곳에서 출처 표시 없이 인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989년에는 번역서의 재인용에 관한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다”며 검증 대상자를 옹호하는 해명을 늘어놓았다. 자기들만 논문을 써본 줄 아는 모양이다. 번역서의 재인용도 그냥 인용일 뿐이지 무슨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나. 서울대는 조 교수의 경우도 연구부정행위가 아니라 연구부적절행위로 표절이 경미하다고 보고 예비조사로 끝내버렸다.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은 인용으로만 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인문·사회과학의 논문은 인용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사회과학에서 책이나 논문의 수준은 참고문헌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실수로 혹은 의도적일지라도 몇 군데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인용하는 정도는 눈감아줄 수도 있다. 그러나 수십 군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것이 중대하지 않으면 인문·사회과학에서 무슨 다른 중대한 표절이 있는가 묻고 싶다. 물론 그런 표절이 논문을 취소할 정도인지는 대학이 스스로의 책임으로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그런 표절은 남이 보지 못하는 데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양심 불량의 싹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으로 공직자가 될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다.

내 논문에는 출처 없는 인용 따위는 한 군데도 없다고 자신한다. 자신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논문을 쓰는 수많은 학생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다.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조 수석의 눈에는 김 후보자의 논문 표절은 대수롭지 않게 보였나 보다. 자신이 똑같은 표절을 했으니까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