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인의 미식견문록 리옹 ‘르 파스탕’ 이영훈 셰프
1년 전,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미식 평가서 ‘미쉐린 가이드’의 프랑스 편에 한국인 셰프가 별을 받으며 화제를 일으켰다. 한국인이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그것도 본토인 프랑스에서 별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올해 2월, 2017년 가이드가 다시 발표됐고 셰프는 별 하나를 유지하며 한 번의 행운이 아닌, 프랑스가 주목하는 차세대 기대주로 자리를 굳혔다. 주인공인 이영훈 셰프를 프랑스 리옹에 있는 그의 레스토랑 ‘르 파스탕(LE PASSE TEMPS)’에서 만났다.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셰프는 마침 스태프 식사를 막 끝내고 런치 서비스를 준비하려던 찰나였다. 넓지 않지만 장식이 절제되어 정갈하고 모던한 공간. 밝고 따스한 색깔의 나무 테이블 사이로 셰프가 인사를 건네왔다.
[1] 가볍게 데친 굴 타르타르와 송어알, 콜라비, 모과퓨레, 훈연 생선크림, 딜 오일.[2] 깨크림을 넣은 미니 슈.
―‘르 파스탕’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프랑스어로 ‘기분전환’이라는 의미이다. 음식으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자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다.”
―다른 오너 셰프 밑에서 수련한 기간이나 해외 경험이 비교적 짧은 편이다. 학교 졸업 후 곧바로 자신의 레스토랑을 오픈한 계기는 무엇인가.
“폴 보퀴즈 요리학교를 다니면서 폴 보퀴즈 레스토랑(미쉐린 별 3개를 유지하고 있는 리옹의 대표적인 레스토랑)에서 스타주(수련 요리사)를 병행했는데, 10년 넘게 근무한 수 셰프가 알자스 지방의 잘 알려지지 않은 호텔 레스토랑으로 이직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10년 뒤, 20년 뒤를 상상하게 됐다. 또 유럽에서 일본인 셰프의 프렌치 레스토랑이 인정받는 것을 보고 틈틈이 찾아가 맛을 보았는데, 한국인으로서도 도전하고 싶은 자극을 받았다.”
―낯선 이국 도시에서 첫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힘들었을 텐데….
음식 산업으로는 ‘유럽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리옹은 미식의 도시로 불린다.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 살아 있는 전설, 키친의 교황 등 수식어만으로도 존재감이 남다른 전설적인 셰프 폴 보퀴즈를 낳은 도시이며 레스토랑 개수만도 2800여 개에 달한다. 이 중 70% 이상이 자체 브랜드를 내걸고 영업하고 있으며, 프랜차이즈 비중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2016년 미쉐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17곳(3개 1곳, 2개 2곳, 1개 14곳)으로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도시다.
―리옹을 선택한 이유는….
“유학을 와서 몇 년 있었던 곳이니만큼 시장도 잘 알고, 익숙한 도시라는 이유가 크다. 리옹이 미식의 도시라고는 하나 클래식한 편이다. 그만큼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해 이곳에 새로운 변화를 던져보자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달라. 학교에서도 요리 성적이 좋았나. ‘맛’에 대한 감각이 좋다거나 소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었나.
―2800개 레스토랑 중 새로운 또 하나의 레스토랑으로 도전할 때 콘셉트에 대한 고민이 많았겠다.
“리옹 사람들은 리옹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파리보다 역사 깊은 미식 도시라는 자부심이 크다. 그만큼 미쉐린을 떠나서 유명한 레스토랑이 많다. 그래서 클래식한 요리로 도전할 필요는 못 느꼈다. 리옹 사람들도 리옹 음식은 조금 ‘무겁다’라고 표현하는데, 그래서 가벼움을 가미한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다. 이 점을 손님들이 알아준 것 같다.
내가 한국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맛’의 요소에 한국적인 면이 없지 않은데, 이런 특징이 맛보는 이들에게 ‘긍정적’으로 전달된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신맛이 나는데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신맛에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떻게 낸 신맛일까? 무엇을 썼을까?’ 하며 손님들이 궁금해하고 재미있어 한다. ‘정통이 아니다’가 아니라 ‘다르다’는 좋은 변화로 받아들였다.”
―‘한국적인 면이 없지 않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시그니처 요리인 ‘멸치육수와 푸아그라’가 대표적이다. 팬에 구운 푸아그라 요리에 간장으로 맛을 낸 멸치육수를 부어 먹는 요리다. 김가루도 들어간다. 간을 맞추는 식재료로 간장을 즐겨 사용한다. 프랑스에서는 원래 소금 간 대신 재료 자체의 짠맛을 선호하는데, 나는 간장의 짠맛을 즐겨 가미한다.
처음부터 한국적인 요소를 많이 넣기보다는 하나 정도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는데 그 결과 탄생한 요리다. 지금 또 새로운 것을 구상 중이다. 이렇게 하나씩 새롭게 보여주다 보면 나중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코스 메뉴 하나를 따로 만들어서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과 프랑스인의 미각이 다른데 그들이 좋아할 맛의 밸런스를 얻기까지 시행착오는 없었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만한 음식의 간을 결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으로 모든 간이나 맛의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그냥 나 자신을 믿고 가야 하지 않을까….”
[3] 이영훈 셰프가 오픈한 ‘르 파스탕’의 실내.
―지난 1년간 심리적 압박감은 없었는지….
“지난해 처음 받을 때에는 한 번 받았으니 그걸로 만족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기쁘면서도 걱정이 많았다면 올해는 손님들로부터 ‘르 파스탕, 잘한다. 가치가 충분하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미쉐린 스타에 대한 현지 반응은 어땠나.
“이렇게 관심이 높은지 나도 미처 몰랐다. 지난해 2월 1일에 발표가 났다. 2일에 출근을 하는데 동네 할아버지가 아침에 뉴스에서 봤다면서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네 왔다. 알랭 뒤카스, 장 프랑수아 피에주 등 2스타, 3스타 셰프들에게서도 축하 카드를 많이 받았다. 1스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인근 셰프들로부터는 진심 어린 격려도 많이 들었다. 스타를 못 받을 때의 충격에 굴하지 말고 하던 것을 그냥 열심히 하라, 너무 힘들게 애쓰지 말고 지금처럼 하라는 좋은 격려였다. 그들이 존중하는 미식 문화의 일원으로 환영받는 기분이었다.”
[4] 자신의 레스토랑인 프랑스 리옹 ‘르 파스탕’ 앞에 서 있는 이영훈 셰프.
[5] 대구, 구운 사보이 양배추, 배추퓨레, 조개, 조개육수 버터소스. 바앤다이닝 이재훈 제공
셰프의 유쾌하고 시원한 말투와 반짝이는 눈빛처럼 그의 소망이 시원하게 이루어지고 반짝이는 맛으로 세계와 소통하기를 희망한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