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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걸]“100번 넘어져도 101번 일어나면 또 기회가 옵니다”

입력 | 2016-12-23 03:00:00

[COVER STORY/계수미 전문기자가 만난 커리어 멘토]
푸르덴셜생명 회장 손병옥




《20년 전, 손병옥 회장(64)은 소위 경력단절여성으로 푸르덴셜생명에 재취업했다. 이 곳에서 그는 보험업계 최초 여성 상무, 부사장, 사장(C.E.O)이란 남다른 이력을 쌓았다.

지난해부터 회장 직함을 달고 일선 경영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바쁘기는 매한가지다.

‘여성 리더의 멘토’로서, 커리어우먼들의 멘토링 모임을 이끄는 단체 ‘위민 인 이노베이션’ 회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공동대표를 맡아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특히 경계한 것은 제가 사나워지고 공격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손병옥 회장은 “일은 열정적이고 공격적으로 해야 하지만, 여성의 부드러움, 배려심 같은 것들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늘 다짐해왔다”고 말했다. 예순이 넘었지만 고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그는 인터뷰 내내 잔잔한 미소와 온화한 표정을 보여줬다.

 대학 졸업 후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하던 그는 결혼생활을 하며 네 번이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남편의 유학과 근무지 발령으로 두 아이를 기르며 몇 년씩 미국에 머물러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흔 가까이 돼 다시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나게 되자 귀국해서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는 것은 포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1996년 40대 중반의 주부로 한국에 돌아온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HSBC에서 함께 일했던 상사가 푸르덴셜생명 사장이 돼 그를 부른 것이다. 당시 고 3 수험생이던 큰 딸과 남편이 ‘좋은 기회’라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는 인사부장을 맡아 적극적으로 일했고, 7개월이 흐른 그 해 말 사장에게 “내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줘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입사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했고, 이어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경력을 쌓아갔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적 마인드’


“남녀를 불문하고 직장 경력이 단절된 후 재취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새로운 조직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어렵고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늘 얘기해요. 경력 단절을 만들지 마라, 갈 곳이 정해진 후에 직장을 그만둬야지, 그렇지 않은 건 만용이라고요.”

 손 회장은 인사를 비롯해 재무, 마케팅, 영업 등 전 영역을 두루 경험했다. 사람들은 그의 주 특기로 ‘인사’를 첫손에 꼽지만 그는 자신의 주 특기는 ‘오뚝이 정신’이라며 활짝 웃는다. “어떤 일이 주어져도 ‘실패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그는 “실패 속에 반드시 교훈이 있는 것을 체험해왔다”고 덧붙인다.

 “7전8기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요즘 같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100번 쓰러져도 101번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안타까운 건 재능 있는 후배들이 한 가지 일의 성공과 실패에 너무 휘둘리는 거예요. 일시적인 작은 성공이나 실패에 매달리면 길게 가지 못합니다.

 한 후배는 자신이 만신창이가 된 젖은 낙엽 같다고 호소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젖은 낙엽도 비가 그치고 햇빛이 쨍쨍 비추면 다시 말라서 팔랑팔랑 날아오를 수 있다고요.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꼭 다시 옵니다.”

 손 회장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 결국 성공하게 돼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달라졌다는 말도 들려준다.

 “예전에는 사위 삼고 싶은 남자직원, 며느리로 들이고 싶은 여자직원처럼 ‘무던하고 참한’ 사람을 선호했어요. 지금처럼 변화 속도가 빠른 시대에는 순발력 있게 문제해결에 나서는 ‘전사 같은 능동적인 인재’가 높이 평가 받는다고 생각해요.”

 손 회장은 2007년 커리어우먼을 위한 멘토링 활동을 펴는 ‘위민 인 이노베이션(Women in INnovation, 이하 WIN)’을 창립해 지금까지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WIN은 여성 임원들이 모여 만든 단체로 차세대 여성 리더를 위한 컨퍼런스, 토요 멘토링 등 정기적인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올해 9월 출범한 세계여성이사협회(Women Corporate Directors, 이하 WCD) 한국지부의 공동 대표도 맡았다. WCD는 전 세계 70여 개국 기업의 고위 관리직 여성 3500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여성 멤버, 즉 등기이사와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합니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한국에만 지부가 없었어요. 개발도상국인 몽골과 나이지리아에도 있는데요. 이제 WCD를 통해 여성의 이사회 진출을 독려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손 회장은 WCD 한국지부가 WIN의 한 단계 위 여성 리더들의 멘토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다. 그는 “특히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육아 부담이 크지만, 마음만 굳게 먹으면 일과 가정, 둘 다 조화롭게 이끌어갈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저도 아이들 어릴 때는 육아 문제로 밤새 울기도 했었죠. 워킹맘들에게 ‘누구나 큰 고비가 있지만 절대 일을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에너지의 비중을 조절할 필요가 있어요. 회사에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으면 직장에 무게 중심을 두고, 가정에 일이 있을 땐 가정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식으로요.”

 손 회장도 9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이 5년여 간 투병생활을 했을 때는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남편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이제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있는 30대 두 딸들에게도 일을 계속하라고 주문한다는 그는 여성을 리더로 키우는 일에 앞으로도 계속 매진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여성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무엇이라 할까.

 “여성 특유의 유연성, 감수성, 공감능력이 경쟁력이 됩니다. 조직원들을 가족처럼 아껴주고 존중하고 챙겨주는 마더 리더십이죠.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덕적 마인드’라고 생각해요. 늘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업무 성과는 잘하고 못하고를 반복할 수 있지만 도덕성에 손상을 입으면 복구하기 힘드니까요.”

:: 손병옥 회장은... ::

1952년생. 경기여고, 이화여대 영어영문과 졸업.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지점(1974), 브루클린 세이빙즈 은행 미국 보스턴 지점(1979), HSBC 서울지점(1987) 등 근무. 1995년 조지메이슨대 영어교육학 석사 취득. 1996년 푸르덴셜생명에 인사부장으로 입사해 이사(1997), 상무(1999), 전무(2001), 부사장(2003)을 거쳐 2011년 푸르덴셜생명 대표이사(사장)로 선임됨. 2015년 일선에서 물러나 푸르덴셜생명 회장 겸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


글/계수미 전문기자 soomee@donga.com
사진/푸르덴셜생명 제공
동아일보 골든걸 goldengir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