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누가 더 나은 감독이냐는 질문에 “역대 최고 감독은 요한 크라위프, 현재 최고 감독은 히딩크”라고 했다. 당시 히딩크는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루어낸 데 이어 호주 대표팀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10년 전 독일 월드컵 당시 들었던 네덜란드 기자의 이야기를 떠올린 건 최근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을 읽어 본 뒤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원칙 없는 선수 선발로 ‘의리 축구’ 논란을 빚었던 홍 감독은 이 논문에서 “팀을 새롭게 정비하고 본인이 원하는 방식을 체득시키기에는 그 기간이 촉박했고 때문에 과거에 나와 호흡을 맞췄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고참급 선수가 필요했던 것이 그 당시 상황이었다”고 적었다.
많은 감독이 히딩크처럼 적재적소에 선수들을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려면 선수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시간이 촉박했던 홍 감독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리려 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는 축구를 떠난 분야에서도 조직의 리더가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자신이 잘 알고, 일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낯선 인물을 핵심 보직에 앉히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소속팀에서 활약이 미미한 선수는 뽑지 않는다는 원칙을 무너뜨리고 자신이 믿는 선수 위주로 뽑은 뒤의 부작용은 컸다.
홍 감독의 실패에는 분명히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이 있다. 이 점이 그의 논문이 지니는 유효한 점일 것이다. 그러나 홍 감독의 자성 어린 분석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함께 거론되어야 할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브라질 월드컵 실패 요인을 분석할 때면 으레 홍 감독의 편파적 선수 선발이 도마에 오른다. 그러나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감독 개인에게만 지울 수 있는가.
한국은 역대 월드컵에서 성적이 좋지 않을 때면 감독 교체 카드로 위기를 돌파하곤 했다. 그러나 이는 언제나 대증요법일 뿐이다. 브라질 월드컵 실패 요인과 관련해서도 홍 감독의 ‘의리 축구’ 논란뿐만 아니라 감독 선임의 중장기 과정, 유소년 축구를 비롯한 전반적인 축구 인프라의 개선, 프로축구의 질적인 발전 등 복합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함께 논의했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홍 감독 개인에 대한 비판에 가려 적극적으로 거론되지 않은 느낌이 있다.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