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민주주의 수준이 높다는 미국 대선도 그렇다. 그 흔한 ‘위대한 선택’이라는 말도 들리지 않는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오바마 아류’ 힐러리 클린턴과 ‘막 자란 10대’ 도널드 트럼프가 판치는 선거”라며 혀를 찼다. 더 나은 후보조차 없는 ‘삼류들의 전쟁’이라는 거였다. ‘그 나물에 그 밥’ ‘도토리 키 재기’의 영어 표현이 있었다면 다 늘어놓을 터였다.
공화당 선두인 트럼프의 호감도는 24%(17일 NBC방송 발표). 여야를 통틀어 꼴찌였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결합체”(전·현직 멕시코 대통령)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문법 실력”(카네기멜런대 언어기술연구소)이라는 조롱을 받는 것치곤 나쁘지 않다는 촌평까지 버젓이 TV 전파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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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라고 나을 게 없다. 그의 호감도도 32%였다. ‘도긴 개긴’이란 말이 이 대목에 어울린다. 국무장관 시절 사설 e메일로 기밀을 다룬 게 불신의 이유라지만 근본 문제는 새 비전이 없다는 점이다. 테크노크라트가 중심이 되는 강한 정부를 통해 인종 간 평등을 실현하겠다는 그에게는 ‘짝퉁 오바마’라는 비판이 따라다닌다.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편드는 척하는 욕심쟁이 할머니’ 이미지. 그게 힐러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데도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힐러리는 지난주 뉴욕 주 경선 대승으로 사실상 후보 지명만 남겨뒀다. 트럼프를 끌어내리는 것 역시 공화당 지도부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돼 가고 있다.
모든 게 ‘성한 물건’이 없는 탓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호감도 50%를 넘는 후보가 없을 정도다. 과거에도 그랬을까. 2008년 버락 오바마 후보와 2000년 조지 W 부시 후보의 선거 7∼8개월 전 호감도는 각각 62%, 63%였다.
국민이 좋아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는 인물이 대통령이 돼 간다는 건 병들어 가고 있는 미국의 단면이다. 불평과 불만이 이성과 지성을 짓누르고 있다는 증거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다수의 환영을 받지 못할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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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