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첫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조사
위안부 소녀상.
실제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대부분(88.2%)이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상처와 아픔은 아물지 않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여성가족부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함께 지난해 10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가족에 대한 PTSD 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국내 거주 할머니 43명 중 건강 등을 고려해 17명을 선정한 후 진행했다. 정부 차원에서 이 같은 조사를 실시한 것은 처음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기록한 영화 ‘귀향’ 속 한 장면.
여성부는 또 위안부 할머니의 가족 13명에 대해서도 같은 조사를 실시했다. 이 같은 장애가 세대를 이어 나타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결과 6명이 PTSD 위험군으로 분류됐으며 이들에 대해선 개별 면담도 진행했다. 가족의 경우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을 ‘외상’으로 설정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딸인 B 씨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 화가 났고, 어머니가 몹시 미웠다”며 “온 집안이 큰 충격을 받았고 혹시 남들이 알까 봐 두려웠고 모두 쉬쉬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가족 응답자 대부분(76.9%)이 할머니의 일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말하려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B 씨는 오랫동안 모녀 관계를 끊고 지냈지만 8년 전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다시 만났다. B 씨는 “어머니의 일은 내게 평생 상처가 됐다”면서도 “그런 고통을 참고 살았던 어머니의 삶이 너무 불쌍하다. 살아계시는 동안이라도 계속 옆에서 돌봐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조사와 면담 등을 분석한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보건학)은 “가족은 보통 피해자 할머니에 대해 분노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불쌍하게 여기는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며 “특히 딸에게 이 같은 연민이 어머니를 헌신적으로 돌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 생존자는 44명이다. 이 중 40명은 국내에, 나머지 4명은 일본과 중국에 거주한다. 평균 연령은 89.4세. 고령인 만큼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도 취약하다. 절반 이상이 고혈압과 치매를 앓고 있고 상당수는 관절염과 당뇨병, 뼈엉성증(골다공증) 등의 질환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일반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할머니도 11명에 이른다. 정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1인당 월 126만 원의 생활안정지원금과 간병비 월평균 105만5000원을 지원한다(2016년 기준). 이는 지난해에 비해 각각 21.0%, 39.4% 증액된 액수다. 또 이달 초 이들을 대상으로 생활상 애로사항을 조사했고 그 결과 주택 보수(4명)와 틀니(5명), 휠체어(1명), 온열치료기(1명), 의료비 및 의료용품(8명) 등의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부는 이달 중 예산을 집행해 지원할 계획이다.
여성부 관계자는 “할머니들의 건강 상태를 세심하게 체크해 정부 지원을 촘촘히 하기 위해 PTSD 조사를 진행한 것”이라며 “일대일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고 지역 의료기관과 연계하는 등의 방식으로 좀 더 꼼꼼하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