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용납하지 않은 운명적 사랑… 섬세하고 치밀한 심리묘사가 압권
영화 ‘캐롤’에서 캐롤(케이트 블란쳇·왼쪽)과 테레즈(루니 마라)는 서로에게 운명처럼 빠져든다. 올댓시네마 제공
4일 개봉한 영화 ‘캐롤’(18세 이상)은 레즈비언이 무엇인지조차 드러내놓고 말하기 힘들었던 시대,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고립된 두 여자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얘기다.
테레즈는 사진에 재능이 있지만 자신감이 없고,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못한다. 캐롤은 자기 정체성을 억누른 채 살다 결국 남편에게 이혼을 고한 참이다. 그 시대, 여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것은 이중의 고난이었다. 둘은 점심을 같이 먹고, 집에 방문하고, 마침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 소설을 쓴 여성 스릴러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소금의 값’을 원작으로 삼아 섬세하고 치밀한 심리 묘사만으로도 긴장감 있게 결말로 나아간다.
두 배우,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가 없었다면 영화의 설득력은 한층 떨어졌을 것이다. 우아하고 저돌적이지만, 동시에 불안한 캐롤을 연기한 블란쳇의 매력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누구라도 단숨에 굴복시킬 정도로 압도적이다.
미국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강렬하지만 쓸쓸한 화면, 크리스마스캐럴과 뒤섞인 우울한 피아노 선율, 시대를 반영한 의상이 한겨울의 멜로드라마를 마무리한다. ★★★★☆ (별 5개 만점)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