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광복 직후인 1945년 11월 조중훈은 인천에서 부두하역을 하는 한진상사를 설립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한진의 화물자동차 15대가 군수물자로 차출돼 파산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에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버금가는 억척과 부지런함이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버리는 폐(廢)트럭 ‘도라꾸’(트럭의 일본말)를 얻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1961년 주한미군 중고 통근버스 20대를 사들여 서울 종로2가와 인천을 오가는 버스, 요즘 말로 하면 ‘직통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베트남 군수물자 수송으로 돈을 벌고 주한미군 가족들 이사까지 도맡았다.
사업 수완이 남달랐다. 1967년 대진해운을 설립하고 이듬해 동양화재해상보험 한국공항 한일개발 인하대를 차례로 인수했다.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박정희 대통령이 적자투성이 대한항공공사(KNA)를 1969년 넘겨주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항공(KAL)의 역사다. 인하대 한국항공대 등의 잇따른 인수는 종신지계막여수인(終身之計莫如樹人), 즉 ‘한평생 살면서 사람을 심는 일만 한 것이 없다’는 중국 고서 관자(管子)의 말을 경영철학으로 삼은 데서 나왔다.
조현아가 회삿돈으로 1300만 원짜리 퍼스트클래스에 앉아 여승무원과 사무장을 윽박지르고 비행기까지 돌린 대가가 혹독하다. 부사장 자리, 국토교통부 과징금, 주가 폭락에 따른 시가총액 수천억 원만 잃은 게 아니다. 경복궁 인근 2000억 원짜리 부지 3만7000m²에 7성급 호텔을 짓겠다는 ‘조현아 플랜’에 당국자는 도장 찍기를 주저하고 있다. 서비스업 활성화 정책과 맞물려 있는 것이어서 파장이 간단치 않다. 유가가 떨어져 회사가 돈을 많이 벌 찰나에, 대한항공이 잘돼야 구조조정 중인 한진해운도 살 수가 있는데 정부의 고민이 깊다.
이번 사건으로 건실한 재벌 3, 4세들까지 도매금으로 손가락질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다간 장수기업으로 키워야 할 중견기업의 후손이 가업(家業)을 이어받도록 한 상속증여세완화법안도 물 건너가지 않을지 걱정이다. 잠자던 경제민주화 법안들까지 스멀스멀 기어 나올 수도 있다. 조현아가 할아버지 창업정신을 체화(體化)했더라면 이 엄동설한에 여론의 몰매를 맞는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장손녀의 구속영장 청구 소식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가슴이 아릴까 싶다. 할아버지는 맨손 하나로 대기업그룹을 만들고 인간 중시 경영에 평생을 바쳤지 않은가.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