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원 정치부 차장
김 실장이 인터뷰를 하지 않으니 뭐를 유령이라고 하는지 알 도리는 없다. 다만 엄청난 권력자로 포장된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 그리고 분위기에 편승해 청와대를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을 겨냥한 것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박 대통령 주변의 유령 논쟁은 처음이 아니다. 1998년 보궐선거로 현실 정치인이 된 박 대통령이 ‘큰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3대(大) 유령과의 싸움도 본격화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령-박지만, 그리고 최태민 목사와 그 사위인 정윤회 유령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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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하는 듯한 근령-지만 씨 유령을 깨워낸 사람이 조응천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네거티브 대응팀을 이끌었던 ‘퇴마사’가 판도라의 박스를 열어젖힌 형국. 한 청와대 관계자는 “조응천은 감시견(犬)으로서 충성한답시고 정윤회를 ‘마지막 거악(巨惡)’으로 규정해 일전을 벌였지만 결과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괴물에게 생명을 부여한 격”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도 조응천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1년 내내 정윤회 세력과 혈투를 벌이던 중 힘이 부치자 박지만 EG 회장에게 원군(援軍)을 요청하면서 ‘유령들의 전쟁’이 벌어졌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듯하다.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친박 쪽에서도 유령 발호의 근본 원인은 박 대통령의 캐릭터와 스타일이 제공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유폐(幽閉)됐던 18년의 세월 동안 키워온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친인척 철저 배제라는 원칙이 최소한의 소통 기회마저 박탈했다는 것. “누나가 무섭다”고 했다는 친동생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유력 여권 소식통은 “지나치게 권력을 신성시한 결벽증이 문제인 것 같다”며 “권력을 독점하겠다는 뜻도 아닌데 너무 많은 오해를 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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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못 산다는 조카 세현 군(9)과 청와대 앞마당에서 뛰어놀면서 근심 걱정도 좀 털어내면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활력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필자 생각엔 목을 내놓고 간언할 수 있는 배포 큰 측근이라면 ‘낙하산’ 타고 위민관에 내려앉는다 한들 뭐라 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다.
독야청청(獨也靑靑) 소나무 한 그루가 이끌어 가기에 한국은 너무 커졌고 세상은 빛도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변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지적처럼 지금 박 대통령은 너무 외로워 보인다.
하태원 정치부 차장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