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보살펴준 나라에 감사하고 매일 찾아와 죽 끓여준 봉사자 고마워”
고 최오남 씨가 장수노트에 작성했던 유언.남은 재산 전부를 불우이웃에게 기부한다고 적혀 있다. 광주 서구 제공
최근 세상을 떠난 홀몸노인 최오남 씨(75)는 이웃이 장례를 치러주는 공영장례를 신청하며 ‘장수노트’에 이 같은 유언을 남겼다. 장수노트는 홀몸노인이 생전에 장례 계획을 기록하는 일종의 ‘임종 기록부’다.
최 씨의 삶은 평생 외로웠다. 그는 보육원에서 자라 일용직 근로자로 생계를 꾸리며 50세가 넘어 결혼했다. 아내는 딸을 하나 둔 이혼녀였다. 그가 가정생활을 꾸리던 중 부인이 몸이 아파 숨지자 의붓딸도 집을 나갔다. 그는 10여 년 전 다시 혼자가 됐다.
홀로 죽음을 맞으려 했다. 그는 1500가구가 사는 아파트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이웃이 없었다. 그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없는 듯 살았다. 고독사를 선택한 최 씨는 서명란 금호1동 주민센터 사회복지사(48)에게서 집안일을 보살펴주는 방문서비스를 받으라는 제안을 받았다. 최 씨는 9월 23일 그 제안을 받아들여 공영장례를 신청하고 장수노트를 작성했다. 최 씨는 이후 이웃 이순자 씨(56·여)의 방문서비스를 받았다. 이 씨는 매일 최 씨의 집을 청소하고 죽을 끓여줬다.
최 씨는 지난달 27일 병원에 다시 입원하기 전 이 씨에게 화장지로 싼 금가락지 한 쌍을 건넸다. 최 씨는 “생의 끝자락을 보살펴준 이 씨와 국가가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다. 최 씨는 입원한 지 15일 만인 11일 오전 1시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최 씨는 평소 노인연금 20만 원에 기초수급비 28만 원을 더한 48만 원으로 살림을 꾸렸다. 막바지 투병 때에는 돈을 아끼기 위해 병원에서 권하던 영양제도 거부했다. 그의 재산은 병원에 남긴 현금 40만 원 이외에 아파트보증금 139만 원, 통장 잔액 9만8000원이 전부다. 이웃들은 최 씨가 전 재산 기부유언을 남김에 따라 현금 40만 원은 동네 저소득층에 기부했다. 또 아파트 보증금도 기부가 가능한지 확인키로 했다.
최 씨의 마지막을 돌본 이 씨도 최 씨가 건넨 쌍가락지를 금호1동 주민센터에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