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요즘은 이런 질문을 받는 일이 확 줄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그러려니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직장인들이 엄청나게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패션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옷을 통해 자신의 감성과 재능,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넥타이 맨 ‘회사원’들이 책상을 지키는 사무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차림도 많다. 가슴 라인을 드러내거나 실종될 듯 짧은 반바지, 꽃무늬의 점프 슈트(작업복처럼 아래위가 붙은 바지), ‘속옷 여기 있음’을 강조하는 블라우스나 레이스 바지 등등. 최근 한 호텔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파자마 차림의 여성이 입장하는 걸 보고 투숙객이 실수로 들어온 줄 알았는데 파자마 패션을 대담하게 시도한 업계의 직원이었다. ‘그녀의 연출력이 부족했거나, 내 이해력이 떨어졌거나’일 것이다.
옷이 이처럼 그것을 입은 사람과 세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오늘날 복식학자들은 “옷이 몸과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소리 없는 언어”(최현숙 동덕여대 의상학과 교수)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옷은 의미 없는 껍데기일 뿐이라는 사고가 지배하던 근대 초에는 ‘소리 없는 언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남성에겐 무채색 양복을 강요했고, 남성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여성이 ‘여성성’이나 ‘패션성’을 드러내는 일을 금지했다. 트임이 있는 스커트나 소녀 같은 분홍색은 금기였다. 그래서 공직과 정계, 기업에 여성들이 처음 진출할 무렵, 여성들은 펑퍼짐한 투피스 정장을 입었다. 이건 어쨌든 서양 얘기고, 한복을 입다가 서양 옷을 ‘갑자기’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은 뭘 입어야 할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1979년 교복 입은 여학생들 앞에서 교복자율화를 선언하는 김옥길 교육부 장관의 한복 차림이다. 1952년 이후 최초의 여성 장관이 된 그는 출근할 때마다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또 ‘무려’ 장관인 ‘롤모델’을 보며 여학생들은 이제 교복 대신 한복을 입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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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