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수많은 한국인의 가슴에 큰 울림을 남기고 18일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이 땅에서 보낸 4박 5일 동안 교황은 인간미 넘치는 소탈한 행보와 낮은 곳을 향한 발걸음으로 종교와 세대를 넘어 ‘교황 신드롬’을 일으켰다. 마치 응석이라도 부리듯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온갖 아물지 않는 갈등과 분열이 응축된 국내 문제들을 죄다 그 앞에 쏟아냈다. 교황은 너그럽고 참을성 있게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고 그 치유와 위안의 메시지에 대한민국은 열광했다. 교황과 함께한 닷새는 모처럼 평안했다.
세계 천주교의 최고 어른이자 이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교황이 보여준 리더의 품과 깊이는 달랐다. 군림하지 않는 섬김의 리더십,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는 리더십은 우리 국민들로부터 각별한 공명을 얻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정성이야말로 소통과 공감의 열쇠라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준 것이다. 종교계뿐 아니라 이 땅의 정치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리더십의 전범(典範)이었다.
교황은 이 땅의 그늘진 곳에 희망을 선물했다. 사지가 마비된 장애인을 찾아가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찾아갈 수 없는 곳에 사는 북한 주민들을 마음에 둔 듯, 교황은 어제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의 미사’에서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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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작아지는 것을 선택하고, 좀 더 좁은 곳에 머물며, 소외된 이와 함께하라’는 교황의 한결같은 메시지는 불신과 적대감으로 대립해온 한국인에게 치유의 빛을 비추었다. 그러나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는 벌써 교황의 순수한 배려와 위로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이어서 오히려 정치사회적 대립이 심해질까 우려스럽다.
어제 교황은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만나 “서로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자”며 열린 마음을 강조했다.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 한국 사회도 그 메시지에 응답해야 한다. 교황이 떠난 자리에 뿌려진 화해와 평화의 씨앗을 울창한 숲으로 키우는 일, 우리에게 남겨진 선물이자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