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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베트남戰 확전 계기 ‘통킹만 사건’ 50주년

입력 | 2014-08-01 03:00:00

NYT보다 앞서 1967년 정보조작 폭로 화이트 씨
“확전 시나리오 짜놓고 허위로 꿰맞춰 국민 속인 정부, 군인의 양심도 침해”




미국 정부가 베트남군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던 미 구축함 매덕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정부는 대중을 속이고 베트남전쟁 확전을 지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전쟁은 군인의 양심과 명예, 믿음, 애국심을 은밀하게 하지만 근본적으로 침해했습니다. ‘군인 정신’에 대한 보이지 않는 공격이었던 셈입니다.”(베트남전 참전 미군 존 화이트·사진)

1964년 8월 2일과 4일. 린든 존슨 당시 미 대통령은 베트남군이 통킹 만에서 미 구축함 매덕스 호와 터너조이 호에 어뢰 공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존슨 행정부가 의회의 전쟁결의안을 얻어내 확전의 명분으로 삼은 이 사건은 1971년 허위로 드러난다. 뉴욕타임스(NYT)는 국방부 비밀문서를 입수해 국가안보국(NSA)이 정보를 조작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이보다 4년 앞서 미 행정부의 통킹 만 사건 발표가 진실이 아니라고 외쳤던 미 해군 병사가 있었다. 1962∼65년 해군 대위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존 화이트 씨가 그 주인공이다.

코네티컷 주 시골 영어교사 출신인 화이트 씨는 50년 전인 1964년 8월 4일 터너조이 호가 베트남군의 어뢰 공격에 당했다는 사건 직후 현장에 출동한 정보선 파인아일랜드 호에 타고 있었다. 직접 배에서 만난 병사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존슨 행정부는 대규모 군사개입을 단행했고 미군 피해와 베트남 양민 학살 등 부작용이 커졌다. 전쟁에 염증을 느낀 화이트 씨는 전역해 반전 단체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67년 가을에는 고향 지역신문인 ‘뉴 헤이븐 레지스터’에 정부의 통킹 만 사건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을 ‘독자 투고’ 형식으로 기고했다.

이 기고문은 정치권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반전 운동을 전개했던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 외교위원장이 조용히 워싱턴 청문회에 나와 달라고 그에게 요청했다. 그가 워싱턴 공항에 도착하자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신문 1면에 올려놓았다.

이후 그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한 이웃은 “내 집에 발을 들이면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교육당국은 교사인 그에게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예일대 로스쿨에서 반전 강연을 하는 동안 누군가가 밖에서 당구공을 던져 유리창을 산산조각 내기도 했다. 그는 반역죄로 처벌받을까 봐 두려워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를 괴롭힌 것은 바로 상처 받은 군인정신이었다. 그 역시 한때 민주주의를 지키고 공산주의 중국을 저지한다는 정부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존슨 행정부가 통킹 만 사건 수주일 전에 이미 의회 결의안 초안을 만들어 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확전을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50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통킹 만 사건-50년 뒤’를 집필한 것은 바로 그 ‘군인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사건 50주년이 되는 이달 5일 고향 코네티컷 주의 한 도서관에서 출판기념식을 열 예정이다.

파란만장한 노병의 이야기는 최근 지역 잡지인 코네티컷 매거진에 게재됐다. 기자는 화이트 씨에게 “지금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다시 편지를 쓰겠느냐”라고 물었다. 화이트는 “그렇게 할 것이다. 후회는 없다”고 답했다.

이 통킹 만 사건은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박정희 정부는 이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나 공산주의로부터 자유세계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베트남전 파병을 결정했다. 다음 해 청룡부대 병사들이 실제 전투에 나섰다. 박 정권은 그 대가로 미국의 원조를 받아 경제 개발에 활용했다. 32만여 명의 병사가 참전해 5000여 명이 전사했고 고엽제 피해자도 속출했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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