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문화부 차장
김수현 전지현의 중국 생수 CF 논란을 보면 걸그룹 카라의 ‘독도 침묵’ 사건이 떠오른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카라는 2012년 “일본에서 독도 관련 질문을 받는다면?”이라는 국내 매체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가 ‘친일’ 걸그룹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카라에서 탈퇴한 멤버 지영이 최근 일본에서 연기자로 데뷔한다는 소식에 국내 반응은 냉랭한데 “카라가 친일적이어서”라는 것이 일본 언론의 해석이다.
카라의 독도 사건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 관계가 냉랭할 때 일어났지만 이번 생수 논란은 한중 지도자 사이에 봄바람이 부는 가운데 터졌다. 양국 관계가 어떻든 역사나 영토 논쟁은 큰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뜨거운 불씨인 것이다.
이들에게 역사관을 묻는 것은 해외 활동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2012년 독도 횡단 수영대회에 참가했던 한류 스타 송일국은 일본 외무성 차관이 “앞으로 일본에 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해 국내에서는 ‘개념 배우’로 박수 받았지만 이 일로 일본 땅을 못 밟는 연예인이 돼버렸다.
한류는 외교적인 힘까지 발휘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이 “한국 드라마 팬이에요”라고 했을 때 반일 감정이 잠시나마 누그러졌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 권영세 주중 대사는 “한중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여러 지표를 통해 알 수 있다”면서 대표적인 사례로 드라마 ‘상속자들’과 ‘별그대’의 인기를 꼽았다. 2008년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국가주석 방한 때 이영애 장나라가 그러했듯, 3일 시진핑(習近平) 주석 내외가 오면 김수현 전지현이 국빈 만찬에 초대받을 가능성도 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화해의 여지를 남겨두려면 경기장에서 그러하듯 문화 영역에서도 정치적 표현은 삼가야 한다. 양국 간 정치적인 관계가 냉랭하든 열렬하든 문화 교류는 뜨거운 것이 좋다. 정랭문열(政冷文熱) 혹은 정열문열(政熱文熱)이다. 총리 시킬 것도 아니면서 전지현에게 역사관을 묻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