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탄/준비해야 하나 된다] 독일 통일 앞당긴 ‘아우토반’
972년 서독과 서베를린 간 통과교통 협정이 체결된 직후 서독 주민이 탄 승용차들이 서베를린을 오가는 유일한 관문이던 ‘브라보 검문소’ 앞에서 검문검색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위 사진). 이곳을 통해 동서독 국경을 오가는 여행 규모는 1989년 통일 이전에 연간 2500만 명이었다. 현재 이 고속도로에는 브라보 검문소 일부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베를린=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서베를린은 동독의 한가운데 ‘내륙의 섬’처럼 고립돼 있었지만 동서독을 잇는 거점 역할을 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자가용을 이용한 고속도로 통행이 자유화되면서 교류의 관문이 됐다. 한반도 통일대박의 꿈을 부풀리고 있는 ‘철의 실크로드’와 ‘유라시안 하이웨이’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동서독 도로 연결 현장을 찾아가 통일 이야기를 들어봤다.
○ 서독과 서베를린 잇는 회랑(回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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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독일 북부 함부르크 쪽으로 가려 했는데 인터체인지를 잘못 택한 적이 있었어요. 중간에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서독 국경까지 수백 km를 넘어갔다 돌아와야 했지요. 결국 고속도로에서 U턴을 감행했지요.”
1975년부터 서베를린에 살아온 교민 김경흠 씨(56)는 1990년 통일 이전까지 30차례 이상 서독을 방문했다. 그와 함께 베를린에서 아우토반을 달려 2시간여 만에 동서독 국경통제소가 있던 마리엔본에 도착했다.
고속도로상의 마리엔본(동독)-헬름슈테트(서독) 국경통제소는 분단시절 70%의 여행객과 화물이 통과하던 최대의 관문이었다. 통일 후 검문소는 폐쇄됐지만 현재는 분단기념관으로 보존돼 있다. 샤샤 뫼비우스 박물관장(47)이 검문소를 보여줬다. 한쪽 구석에는 차량검사소가 눈에 띄었다. 엔진룸이나 연료탱크 등을 개조한 공간에 숨어 있던 동독인들을 색출하던 장소였다.
“동독 경찰들은 동독 주민들을 수색하기 위해 거울로 차량 밑바닥을 비춰보고 연료탱크에 숨진 않았는지 주유구를 쇠꼬챙이로 찔러보기도 했어요. 탈주자가 탄 것으로 의심되는 차량은 아예 분해하기도 했죠. 서독의 팝음악 음반이나 신문, 잡지도 압수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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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도로 휴게소는 주민 접촉 공간
분단시절 베를린 왕복고속도로의 휴게소는 동서독 주민이 만날 수 있던 접촉의 현장이기도 했다. 동서독 운전자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짧은 인사를 건넬 수 있었고 휴게소 구석에서는 비밀경찰(슈타지)의 감시를 피해 생필품을 전달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당시 리바이스 청바지는 동독 젊은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던 물품이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브리기타 바인베르거 씨(61·여)는 “서베를린을 방문할 때마다 가방 속에 청바지나 운동복 등을 몇 벌씩 넣어가 휴게소 구석 동독인에게 돈을 받고 파는 젊은이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통과교통 협정 발효 이후 동서독 국경을 넘는 여행객은 1970년대 말 연간 500만 명에서 1989년 2500만 명으로 늘었다. 서독은 1990년 통일 전까지 서베를린과 연결되는 고속도로 건설과 보수에 총 24억 마르크(약 1조3000억 원), 통행료 명목으로 총 83억 마르크(약 4조5000억 원)를 동독 정부에 지원했다. 서독 정부는 반대급부로 국경 통행 장애 완화, 접경지역 무기 제거, 동독 내 정치범 석방 등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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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프레드 빌케 전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만일 한반도에도 북한 내에 남한 주민이 거주하는 일정 공간이 있다면 남북한 간에도 통일 이전에 도로를 연결할 명분을 얻을 것”이라며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처럼 두만강이나 압록강 인근에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몽골 등이 합작하는 국제 산업거점 도시 개발은 도로망 연결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교통인프라 투자는 통일뒤 소중한 자산” ▼
獨통일 브레인 데틀레프 퀸 박사
―서독에서는 동독에 ‘퍼주기’ 논란이 없었나. 한국에선 대북 지원이 핵개발로 이어졌다는 비난도 있었는데….
“당연히 있었다. 그런 우려가 사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동독은 도로 보수에 형편없는 수준의 지출을 하면서 그 대신 무기를 구입했다. 그러나 교통 인프라 투자는 모든 교류와 접촉의 기반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통일이 됐을 때 미리 투자한 교통인프라는 낙후된 동독 지역의 개발을 앞당기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한국 정부의 ‘통일 대박론’을 어떻게 생각하나.
“통일 당시 동독은 석탄 외에는 별다른 경제적 자원이 없었다. 그러나 북한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남한의 기술과 어우러지면 큰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물류교통망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도 있다. 한반도 통일의 경제적 효과는 엄청나다. 관건은 사회적 통합의 성공 여부다.”
―독일 통일에 비춰봤을 때 한반도 통일을 위한 준비 상황은 어떤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만해도 서독 정계에서 ‘통일방안’을 논의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서독인은 원래 같은 나라였던 오스트리아와 독일처럼 동서독도 다른 나라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남북한이 통일의 당위성을 공감하고 통일 방안에 대해 논란을 벌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준비된 통일이 최선이겠지만 한반도 통일도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 것이다.”
베를린·마리엔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