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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떠난 김기태, 그에게서 ‘MOON’이 어른거린다

입력 | 2014-05-01 03:00:00

화수분야구-형님 리더십-자진사퇴… 두 사람은 어찌 그리도 비슷하던지
돌아와 놀라운 NC 만든 김경문처럼 김기태도 다시 한번 새로운 감동을




김기태 LG 감독(오른쪽)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타격 코치로 당시 한국 대표팀을 이끈 김경문 감독(현 NC 감독)을 보좌했다. 동아일보DB


▷“내가 지휘봉을 놓는 것을 계기로 선수단이 똘똘 뭉쳐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 김기태 LG 감독이 지난주 자진 사퇴하면서 한 말이다. 3년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하며 물러난 감독이 있었다. 당시 두산 사령탑이던 김경문 NC 감독이다. 그해 6월 두산이 7위로 추락하자 김경문 감독은 “지금 이 시점에서 사퇴하는 게 선수들이 서로 뭉치는 계기를 만드는 길이다”는 말을 남기고 팀을 떠났다.

▷김경문 감독은 프로야구 사령탑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3번째 시즌 초반 자리에서 물러난 신예 김기태 감독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둘은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을 상징하는 말은 강한 카리스마다. ‘형님 리더십’으로 불린 것도 똑같다. 2군 선수들을 중요시하며 ‘화수분 야구’를 지향한 점도 비슷하다. 둘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감독(김경문)과 타격 코치(김기태)로 한국 야구의 전승 우승 신화를 합작했다. 두 사람 모두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엔 가족이 머물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김경문 감독에게는 독특한 어법이 있다. “감독은 말이지∼” 또는 “남자가 돼서∼”라는 표현을 서두에 자주 쓴다. 김기태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도 ‘얼굴’ 떨어지는 일은 하지 맙시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어법에서 드러나듯 둘은 남 탓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성적이 안 좋을 때 대부분의 팀은 코칭스태프 교체라는 처방을 자주 쓴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코치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남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을 탓했다. 그 최종 선택은 자진 사퇴였다. 야구판에서 자진 사퇴는 대개 경질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진짜’ 자진 사퇴를 했다. 아니었다면 구단이 며칠을 따라 다녀가며 만류할 일도 없었다.

▷김기태 감독 사퇴 후 확인되지 않은 억측이 돌았다. 프런트와 갈등을 빚었고 몇몇 고참 선수와 불편한 관계였다는 것이다. 불편한 고참의 대표로 지목된 이병규(등번호 9번)는 “그게 아닌 건 감독님과 선수들이 더 잘 안다. 선수들 탓이긴 하다. 우리가 조금만 더 잘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죄인이다. 감독님을 위해 더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프런트와의 관계도 부풀려진 부분이 많다. 부모 자식 간에도 의견 충돌이 발생한다. 성적으로 평가받는 야구판에서는 어떤 팀이건 크고 작은 갈등이 없을 순 없다. 그 와중에도 LG 프런트와 김 감독은 서로를 배려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김기태 LG 감독이 감독실에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은 본보 2011년 11월 22일자 A25면 기사.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선수들에게 “생존을 위한 철저함”을 강조했다.

▷2011년 말. 박종훈 감독 후임으로 LG 감독으로 선임됐을 때 김 감독을 기다린 것은 축하가 아니라 팬들의 비난이었다. 감독 선임 당일 그는 혼자 캔맥주를 들이켜며 더 나아질 LG를 구상했다. 그는 지난해 팀을 정규시즌 2위로 이끌며 11년 만에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상의 한쪽에 항상 사표를 준비하고 다녔다. 감독직을 처음 맡을 때부터 그랬다. 지난해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1승 3패로 진 뒤에는 구단에 사의를 표했다. 이길 수 있었던, 이겨야만 했던 경기를 진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사표는 구단과 선수단의 적극 만류로 없던 일이 됐다.

▷김 감독은 올 시즌 목표를 더 높게 봤다. 에이스 리즈가 부상으로 빠지긴 했지만 지난해 전력이 고스란히 유지됐고 새 외국인 선수 등 플러스 전력도 기대할 만했다. 그런데 막상 시즌이 시작하자 팀은 최하위권에 처졌다. 될 듯 될 듯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며 그는 확실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했다. 바로 자진 사퇴였다. 2011년 말 처음 감독직을 맡고 주축 선수들이 우수수 빠져나갔을 때 기자는 김 감독과 인터뷰를 한 뒤 ‘떠난 선수 빈자리, 남은 선수들엔 기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김 감독은 그 기사를 액자로 만들어 감독실 벽에 붙여 놨다. 이제 그의 빈자리가 남은 선수들에게 자극이 되길 바라며 그는 유니폼을 벗었다.

▷3년 전 팀을 위해 자신을 내던졌던 김경문 감독은 그해 가을 제9구단 NC 사령탑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잠시마나 야구판을 떠나 세상을 돌아보면서 한층 넓고 깊어진 감독이 돼 돌아왔다. 1군 진입 첫해인 지난해 7위를 차지했던 NC는 올 시즌엔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30일 경기 전까지 2위(15승 9패)를 달리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은 감독 생활 동안 특유의 선 굵은 지도력을 선보인 김기태 감독 역시 언젠가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 새로운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감독으로 되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