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사회부장
정초엔 약간의 소란도 벌어졌다. 비정규직 근로자 수십 명이 직접 그를 만나 담판을 짓겠다며 저녁마다 찾아와 그의 집 앞을 지켰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도 출동해 집 주변을 지켜야 했다.
불편한 일만 벌어진 것은 아니다. 좋은 일도 많이 생겼다. 새벽 내내 폭설이 퍼부었던 날 이른 아침,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동네 곳곳에서 눈을 치우느라 부산했다. 다른 주민들은 “그동안엔 눈이 와도 통 치우지도 않더니…”라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어찌됐든 그 덕에 우리 가족 그리고 다른 이웃 주민들은 빙판길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진입로엔 신호등도 새로 생겼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어서 늘 조마조마하던 교차로였는데 한순간에 해결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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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과의 전격적인 단일화를 통해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 시장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재야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에서 단숨에 대권도 넘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지만, 다가온 6·4지방선거에서 다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재선에 성공할 것인가도 궁금한 대목이지만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며, 뭘 어떻게 헌신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만큼 이를 더욱 분명히 밝혀야 될 때가 온 것이다.
서울시장은 서울의 행정책임자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지방자치 부활 이후 지방선거는 국가적 차원에서 새 지도자를 찾아내는 모색의 과정이 돼 있다. 일을 맡겨보고 그 결과로 혹독하게 역량을 따져보는 진짜 민주주의가 작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선거만 해도 판세가 불리해지면 안철수 의원과 결국 손을 잡을 것이라는 둥, 안 의원에게 빚을 졌지만 등을 돌리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둥 갖가지 관측이 나오지만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전적으로 박 시장의 몫이다. 유불리의 기교적 선택이 아니라 박원순의 원칙과 지향점을 갖고 박원순식 정치로 이런 도전들을 정면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정몽준 의원이나 김황식 전 국무총리에게도 이는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또는 검증이 덜 된 ‘바람’의 후보들만 국민 앞에 서는 것은 나라의 불행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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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그로선 제도권 진출의 고민을 수없이 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장에 도전했고 더 큰 꿈도 꾸고 있을 것이다. 그가 그때 민정수석 자리를 선택해 권력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그의 인생행로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