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그러나 현재의 건강보험재정만 가지고는 건강보험제도의 고유한 목적을 100%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향후 초고령화사회의 대두로 사태는 더 악화될 것이 뻔하다. 지금 우리는 재정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퍼주기식 복지 확대 추세와 어렵사리 꾸려오고 있었던 병원업계의 경영이 과연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 등이 팽배해 있다. 현재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정부와 병원업계는 물론 환자와 가족에게까지 솔직하게 알려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현 보험제도하에서 기본적으로 재원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병원이 떠안고 갈 여유만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저수가 정책으로 원가 보전이 안 되는 구조 때문에 병원은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다. 그동안 병원은 ‘돈벌이 한다’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주차장, 장례식장, 편의점 등 이른바 비고유 목적 사업을 하면서까지 겨우 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허덕여 왔다. 앞으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나 일부 적자 보전 기능을 하던 3대 비급여 존폐 위기 등 수많은 경영 악화 요인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이 시점에서 병원 입장에서 필자의 전문 분야인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환자들을 예로 들어 조목조목 살펴봄으로써 이해를 같이하고 싶다. ‘팔로 사징(Fallot’s Tetralogy)’이란 중간 난도의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소년을 치료한 적이 있는데 이 소년은 2012년 3월 28일부터 2013년 9월 17일까지 약 19개월간 진단, 수술, 수술 후 관리, 외래추적의 과정을 거쳤다. 입원은 5회, 외래는 총 48회 방문하였다.
이 과정에서 든 총 의료비용은 7527만9901원이었는데 병원으로 들어온 총 진료비는 건강보험재정으로부터 보상된 4598만765원(70.4%)과 환자가 직접 부담한 1910만8750원(29.2%)의 합인 6508만9515원이었다. 병원 입장에서는 1000만 원가량 손해였다. 병원은 결국 주차장이나 장례식장에서 손해를 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이 60%대가 넘는다고 하지만 병이 큰 경우에는 환자들의 부담도 막대하다. 서울대병원에서 진료한 13세 급성백혈병 남자 청소년의 경우 2012년 2월 7일부터 10월 17일까지 8개월간 치료를 받으면서 입원 7회, 외래를 82회 방문했다. 총 의료비는 2억5975만2258원이 들었는데 그중 병원에 들어온 진료비는 2억1280만3574원(역시 병원은 20.1% 손해)이었으며 이 중 총 진료비의 72.9%는 건강보험재정에서 부담했지만 환자 측은 5700여만 원이 넘는 돈을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 재정 범위 안에서는 선진국보다 나은 의료보장제도를 유지하기가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증가하는 건보재정 요구의 상승을 감당할 길이 없고 그 결과 보장률 상승이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은 뻔하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앞서 언급했듯 너무나 훌륭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환자와 가족은 물론 국민과 병원업계, 정부가 허심탄회하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드러내놓고 솔직한 토론과 공감대 형성을 해야 할 시점이 됐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이어진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