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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의 경제 프리즘]식빵을 사료로, 전기를 땔감으로

입력 | 2013-11-26 03:00:00


허승호 논설위원

경남 남해의 김 제조업체는 수년 전 김 건조기 연료를 면세 경유에서 농업용 전기로 바꿨다. 그 덕분에 연료비가 연간 2억4000만 원에서 1억6000만 원으로 크게 절감됐다. 이 전기를 경유로 발전한다면 795kL가 필요하다. 당초 경유소비량 162kL 의 4.9배다. 경유로(爐)를 전기로로 바꾸는 주물공장, 비닐하우스의 난방연료를 전기로 교체하는 농가가 숱하다. 대중목욕탕까지 전기보일러로 바꾸고 있다. 모두 전기 값이 싸서 벌어지는 사회적 낭비다.

한국은 전기요금이 세계에서 가장 싸다. 품질도 최고다. 기본적으로 발전단가가 싼 원자력발전 덕분이지만 정부가 원가의 94% 수준으로 요금을 억누른 탓도 있다. 옛 소련에서 ‘빵은 인민생활의 근본’이라며 보조금을 줘 아주 싸게 배급했다. 그 바람에 양돈농가들이 식빵을 가져다 사료로 쓰곤 했다. 지금 우리가 그 일을 비웃을 수 있을까. 전기를 땔감으로 쓰면서.

정부가 이번에 전기요금을 5.4% 올렸다. 용도별로 보면 산업용(제조업)의 인상률이 6.4%로 가장 높아 전경련이 “산업의 대외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전기 값을 놓고 불평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제조업 급성장의 한 요인은 싸고 좋은 전기”라고 해야 옳다. 산업용 요금은 이번에야 원가를 살짝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용(비제조업용)에 비해서도 여전히 싸다.

진짜 문제는 요금이 너무 싸 수요 조절이 안 된다는 거다. 한국은 총생산 대비 전력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1.7배나 되는 ‘전력 과(過)소비국’이다. 그리고 과소비 주범은 주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가정용의 경우 1인당 소비량은 미국 캐나다의 25%,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의 절반에 불과하다. 외국 기업이 전기 싸게 쓰려고 한국에 오는 것을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정부는 15년 앞을 내다보는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2년 단위로 짠다. 그때마다 수요 예측치를 확대 수정했고 “발전용량도 더 키울 것이므로 수년 후면 전력난이 해소된다”고도 했다. 다 거짓말이 됐다. 발전소 건설에도 차질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수요가 예상치를 워낙 빠르게 앞질러서다. 정부는 “이번 요금 인상으로 수요 증가세가 완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상 감축량은 총 발전력의 1%에 불과한 80만 kW다. 이런 식이라면 공장을 멈추고 ‘찜통 관공서’를 강요하는 식의 괴상한 수요 관리가 꽤 지속될 것 같다.

한전은 국세청 공정위를 동원한 ‘억누르기식 물가 관리’를 한 이명박 정부 때(2008년) 적자 행진을 시작해 누적 적자가 10조 원을 넘었다. 신용등급이 뚝뚝 떨어져 이제 해외공사 입찰에 못 나갈 지경이다.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미래를 위한 기술투자를 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에너지산업은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해 고부가 첨단업종으로 급속히 진화 중이다. 스마트그리드, 그린빌딩, 에너지저장장치(ESS), 신재생 에너지 등이 그것이다. 이를 선도하려면, 과소비를 줄여 저탄소 녹색성장을 하겠다면, 좋은 전기를 계속 싸게 쓰고 싶다면…. 적정 연구투자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가격 인센티브를 그렇게 짜야 한다. 여전히 원가에 못 미치며 용도별, 전압별로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를 과감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그럼 물가는? 경제학이 가르치는 대로 통화정책으로 관리해야 맞다. ‘보이는 손’이 개별품목 가격을 짓누르는 방식은 더이상 안 된다. 특히 올해 물가 상승률은 1.3% 수준이며 내년 전망도 2.4%로 안정돼 있다. 요금체계 정상화의 적기(適期)다.

식빵 먹여 돼지 치고, 생수로 설거지하는 식의 전기 낭비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