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의 성공 원인은 무엇일까. 인간적 얼굴을 가진 혁신에 대해 다룬 ‘이노베이터의 10가지 얼굴’의 저자 톰 켈리의 주장에 빗대어 본다면, 꽃보다 할배는 혁신의 10가지 양상 중 ‘타화수분자(他花受粉者·cross-pollinator)’이자 ‘이야기꾼(storyteller)’이며 ‘실험자(experimenter)’의 면모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우선 타화수분(서로 다른 그루나, 다른 꽃 사이의 암술과 수술 사이에서 수분이 되는 현상)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함께 엮어 새롭고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혁신을 일궈내기 위해선 이종교배가 매우 중요하다.
꽃보다 할배도 타화수분의 공식을 따라 기존 예능의 식상함을 깨뜨렸다. 첫째, 고리타분할 것 같은 노년층을 아이돌 스타들이 판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였다. 둘째, 편안하게 효도관광을 받아도 모자랄 이들에게 팔팔한 20대도 고생스러운 배낭여행을 떠나도록 했다. 셋째,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꽃미남 ‘F4’, ‘신사의 품격’의 미중년 4인방의 계보를 잇는 꽃할배 ‘H4’를 탄생시켰다. 근엄한 왕이나 장군 역할을 주로 맡아 온 40대 배우 이서진을 ‘길이나 찾고 표나 끊고 식당이나 수소문하는 짐꾼’으로 전락(?)시켜 버린 건 보너스다. 이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들을 한데 엮어 놓은 결과, 꽃보다 할배는 제작진이 표방한 ‘세상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예능’이라는 차별화된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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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택에 할배 연예인들은 1회 방송부터 ‘직진 순재’ ‘미소천사 구야형’ ‘로맨틱 근형’ ‘심통 일섭’ 등 실제 자신들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그들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복불복’ 게임 같은 작위적 미션이나 자학성 개그도 없앴다. 그 대신 배낭여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출연진 스스로 제한된 예산 안에서 자유롭게 여행계획을 짜면서 스스로 추억을 쌓아가도록 했다. 제작진은 한발 뒤로 빠져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죽어가면서도 이런 모양이 잔상으로 남을 것 같다”는 노배우들의 대화를 조용히 카메라에 담아냈다. “나는 요지경에서 끝나지만 젊은이들은 지금 이 시대에 인정을 못 받더라도 새롭고 가치 있는 걸 시도해 보면 훗날 명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배우 신구의 조언 등을 포함해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꽃보다 할배가 만약 지상파에서 방영됐다면 시청률이 더 높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만약 지상파였다면 아예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부터 좌절됐을 공산이 크다. 심지어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 측면에서 지상파보다 훨씬 너그러운 케이블TV에서조차 “출연진의 연령이 너무 높아 타깃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할아버지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누가 보겠느냐”는 선입견을 뒤로한 채 과감한 시도를 했다. 모든 혁신의 뒤에는 아무리 리스크가 높다 하더라도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실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통하지 않는 방법 1만 가지를 발견했을 뿐이다”라는 토머스 에디슨의 명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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