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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무하 “아르누보 시대 연 ‘지스몽다’ 포스터… 파리시민들이 뜯어가 남아나지 않아”

입력 | 2013-07-15 03:00:00

한국서 ‘알폰스 무하 전시회’ 열고 있는 손자 존 무하




존 무하 무하재단 이사장은 “알폰스 무하는 인간과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자했던 아르누보의 선구자”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비틀스가 1962년 데뷔 싱글 ‘러브 미 두’를 발표해 로큰롤의 시대를 열었듯이 알폰스 무하는 1894년 ‘지스몽다’ 포스터로 아르누보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체코 출신 아르누보의 거장인 조부의 출세작에 대해 설명하는 존 무하 무하재단 이사장(65)의 두 눈은 자부심으로 반짝였다. 무하의 대표작 235점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와 유토피아’전 개막을 맞아 한국을 찾은 그를 13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었어요. 당대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새해 첫날 파리 시민들에게 선보일 신작 연극의 포스터 디자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죠. 돈이 없어 휴가를 떠나지 못한 유일한 디자이너였던 할아버지가 작업을 맡았습니다. 시안을 본 베르나르가 직접 만나길 원하자 할아버지는 ‘아, 면전에서 화를 내려나보다’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연극 ‘지스몽다’ 포스터(1894년). 예술의전당 제공

세로가 파격적으로 긴 은은한 무채색의 ‘지스몽다’ 포스터를 본 인쇄업자들이 한결같이 “끔찍하다”는 비난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나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문을 연 무하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불멸의 이미지를 선물했어요.”

“행인들이 포스터를 자꾸 뜯어가는 게 새로운 골칫거리가 됐죠. 베르나르는 할아버지와 6년 계약을 맺고 포스터, 무대, 의상 디자인을 맡겨 든든한 후원자로 나섰습니다. 이후 ‘무하 스타일’로 불리기 시작한 작품들이 아르누보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1992년 어머니 제럴딘과 함께 무하재단을 설립한 무하 이사장은 최근 아시아 지역 전시 기획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 전시는 2년 전 대만 전시 중에 만난 영국인 큐레이터의 소개로 성사됐다. 그가 재미교포 한국인 며느리를 맞아 첫돌이 갓 지난 손자 ‘아리스테어 가브리엘 인정 무하’를 얻은 인연도 한국행을 서두르게 만든 계기가 됐다.

“아르누보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을 시민의 손에 쥐여 줬습니다. 할아버지는 상업적 디자인뿐만 아니라 회화, 드로잉, 사진 등 여러 영역을 전혀 다른 스타일로 종횡무진했죠. 헬싱키 전시 때 장르별로 나눈 5개의 방을 돌아본 핀란드 대통령이 말하더군요. ‘예술가 5명의 전시를 본 것 같다’고.”

무하재단이 보유한 알폰스 무하의 작품은 3000여 점. 경매시장에 나온 무하의 작품을 꾸준히 사들이며 컬렉션의 빈틈을 메워 가고 있다. 무하 이사장은 “중부 유럽 민속미술의 흔적과 함께 일본 등 아시아 전통미술에서 영향을 받아 발전시킨 스타일도 여러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그 자취를 아시아에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다. 며느리의 친척들과 부산에서 만나 범어사 템플스테이를 경험하고 서울 가회동에서 공예품을 구경하는 등 짬짬이 한국 문화와 예술을 접했다. “한국인의 예술적 시각은 일본이나 대만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무하 스타일’이 이 땅에서 어떤 새로운 반응을 얻게 될지 궁금하고 설렙니다.”

9월 2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666-2775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