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인류가 원자폭탄의 가공할 힘을 목격하고 전쟁이 끝나면서 원자력은 ‘평화적 이용’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원자력 잠수함 노틸러스가 개발되고 그 반응로를 변형시켜 상업용 원자로가 만들어진다.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을 다루는 사람들의 독특한 사고체계는 바뀌지 않았다. “그들(원자력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바다에 떠있는 사회주의자의 섬”이라는 표현은 1950년대 미 의회 청문 과정에서 나왔다.
비밀주의와 엘리트주의는 우리도 다르지 않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첫째 원전 사고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부침을 겪었던 다른 나라와는 달리 국내 원자력은 역대 대통령들의 전폭적 신뢰와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최초의 국가 종합연구기관인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원전을 도입한 데 머물지 않고 핵무기 개발까지 꿈꾸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원전 수출을 이룬 이명박 대통령까지 원자력은 역대 대통령들의 무한신뢰의 대상이었다.
셋째 우리 원자력 업계는 사제와 선후배로 얽힌 학연(學緣)이 작동하고 있다. 학연은 어느 분야에서나 존재하지만 학연과 전문성이 겹칠 때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폐쇄성은 커진다. 서구에서는 워낙 많은 대학이 있기 때문에 특정 학맥이 업계를 장악할 수 없다. 맨해튼 프로젝트만 해도 미국 영국 호주는 물론 독일의 망명 과학자 등 다국적 학자가 참여했다.
원전 사고 은폐, 납품 비리에 이어 시험성적서 위조까지 터지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그러잖아도 좋지 않은 원자력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문성 비밀주의 애국주의 학맥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며 외부와의 소통을 무시한 원자력 식구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 내부고발이 있었다는 것은 원자력이라는 큰 파이를 두고 업계 내에서 균열이 시작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적 비리가 이제라도 곪아터진 것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안전은 사고를 겪으며 더 강화된다. 다만 전체 원자력 종사자들의 과도한 사기 저하가 안전을 되레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은 걱정이다. 교사에게서 심한 꾸중을 들은 학생은 실수를 더 많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수의 선량한 원자력 종사자와 ‘마피아’ 소리를 듣게 한 주범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암암리에 거론되는 마피아 두목의 이름이 궁금한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