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인간은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이 질문과 관련해 생각해볼 만한 사례가 있다. 20세기 영국의 저명한 사회인류학자인 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 경(卿·1902∼1973)의 역저 ‘누에르족’에 드러난 시간관이다.
누에르족은 남부 수단에 거주하는 나일 제족(諸族)의 하나다. 에번스프리처드 경에 따르면 누에르족은 시간의 흐름을 자연의 변화가 아닌 인간의 활동을 기준으로 이해한다. 소를 사육하는 목축민인 누에르족은 1년 중 우기에는 높은 언덕에 세운 마을에서 잡곡을 경작하며 보내고 건기에는 물과 목초를 찾아 나일 강가에서 야영 생활을 한다. 이에 따라 ‘소를 몰고 가는 시간’ ‘젖 짜는 시간’ 등 목축과 관련한 일련의 작업과 작업 간 관계에 따라 특정 시각과 시간의 경과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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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에르족은 1년 단위의 시간과 1년을 넘는 장기간의 시간(3년, 5년 등)을 서로 구분해 인식한다. 우선 누에르족은 마을(우기)에서 야영지(건기)로 옮겨가는 생활을 1년 단위로 해마다 반복한다. 이 때문에 1년 안의 사건들은 생태계의 변화와 함께 거주지를 바꾸는 왕복 주기 안에서 이해한다. 반면 3년 전, 10년 전처럼 1년을 훨씬 넘어서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중요한 이벤트와 연결해서 인식한다. 예를 들어 “마을이 습격을 당하기 전에” “대홍수가 난 바로 뒤에” 등 집단 전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들을 기준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주목할 점은 각 부락마다 겪는 여러 가지 사건과 경험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같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부족마다 다르게 느낀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누에르족에게 시간은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상대적이며 주관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 정해져 있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의 활동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시간을 규정하고 해석하는 누에르족은 마치 시간의 지배자가 된 것 같다. 시간을 자연의 변화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가 아니라 인간 활동을 중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 물론 부족 사회에서나 가능할 법한 시간관을 고도로 발달된 21세기 문명사회에 그대로 옮겨올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을 인간의 활동 안에서 주관적으로 재해석하는 관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의 학술 저널리스트 슈테판 클라인의 명저 ‘시간의 놀라운 발견’에서도 지적됐듯이 기억 속에서 시간의 길이는 정보의 양에 비례한다. 즉, 뇌로 흡수되는 정보가 많으면 시간을 길게 느끼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것 없이 지내면 그만큼 짧게 느낀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많이 경험할수록 나중에 기억되는 시간의 길이는 그만큼 길어진다. 어린 시절엔 시간이 더디게 지나가는 것 같다가도 어른이 되면 갑자기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모든 게 새롭기만 한 어린 시절에는 흡수해야 할 정보가 매우 많아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아는 게 많아질수록 별로 새로울 게 없다 보니 그만큼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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