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석배 교수 논문서 주장
발해 상경성의 궁성 안에서 바라본 정남문의 흔적. 정남문의 동서 길이는 약 82m로, 당나라 장안성의 궁성 대명궁의 정문(74.5m)보다 길다. 왼쪽과 오른쪽에 뚫린 2곳이 사람이 드나드는 문길이다. 정석배 교수 제공
상경성은 발해 다섯 수도 중 하나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닝안(寧安) 시에 유적이 남아 있다. 수도의 경계가 되는 장방형의 외성(外城)과 궁전이 있는 궁성(宮城), 관청이 모인 황성(皇城)으로 구성됐고, 남북과 동서 방향의 도로들로 질서정연하게 구획된 도성이었다. 외성의 둘레는 약 16km에 달했다. 장안성은 산시(陝西) 성 시안(西安)에 위치한 당의 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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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의 지방성들을 모두 확인한 결과 장안성이나 상경성과 같은 구조를 가진 성은 없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당의 지방성 가운데 상경성과 크기가 비슷한 대형 성들에는 주작대로와 같은 중앙대로가 없고, 궁이나 관청이 성의 서북쪽 혹은 서남쪽에 치우쳐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상경성이 당의 지방정권이라면 장안성의 등급을 넘지 말아야 하는데, 실제 상경성에는 예제(禮制)를 벗어나는 시설이 적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장안성 밖 동북쪽에 있던 궁성인 대명궁 북문의 문길은 1개다. 반면 상경성 궁성의 정북문은 문길이 2개로 더 많다. 상경성 외성의 정남문은 동서 길이 57.6m, 상경성 궁성의 정남문은 동서 길이 약 82m로, 장안성 외성의 55.5m, 장안성 대명궁 정문의 74.5m보다 길다. 또한 상경성의 2호 궁전은 기단의 가로 길이가 92m로, 장안성에는 정면에서 볼 때 이보다 더 큰 건물이 없다.
발해가 황상(皇上), 황후(皇后), 천손(天孫) 등의 용어와 독자적 연호를 사용했다는 역사적 기록과 이를 결합하면 발해가 당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중국 관변학자들의 주장은 더욱 설 자리가 없어진다. 정 교수는 “상경성의 핵심지역인 궁성은 고구려 안학궁성의 구조를 따르고 있어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