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 국제부 차장
2009년 10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싱가포르에서 만나 연내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양해각서(MOU) 초안을 들고 왔지만, 다음 달 실무조건을 논의하던 당국 간 개성 회담이 결렬됐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위대한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 이런 대(對)국민 기자회견을 열었다면 어땠을까.
이 대통령이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의사에 반해 북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고향 구경을 시켜 주고 싶습니다. 제가 휴전선을 넘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어봤다면 ‘별 성과가 없더라도 잘 다녀오라’고 했을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북한 최고지도부를 대화의 테이블에 앉히고 변화를 요구했더라면….
유일 독재자의 사망이라는 정변이 난 판에 남한 사람들이 평양에 한꺼번에 몰려오면 체제가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북한 지도부는 ‘미안하지만 다 오시면 대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니 (평소 장군님이 좋아했던) 누구, 누구누구만 들어오시면 좋겠다’고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던 ‘진정한 종북(從北) 좌파’의 실체를 확인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올해 6월 4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공개통첩장을 내놓으며 남한 7개 주요 언론사의 좌표를 공개하고 미사일 공격 위협을 했을 때는 어떤가. 남한의 자유 언론이 자신들의 지도자에 대해 곱지 않은 표현을 일부 썼을지언정 청와대와 정부중앙청사, 국회가 있는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 밀집한 언론사들을 미사일로 공격하겠다는 위협은 비록 공갈일망정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 그 자체였다.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당시 상황을 전쟁 선포로 규정하고 상응하는 ‘군사적 대응 공갈’로 맞받아 북한에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면 북한도 한국 정부를 다시 봤을 것이고 국민들 마음도 든든했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이명박 정부 5년의 남북관계를 돌이켜보면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다. 북한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에 쫓기면서도 대화와 도발의 ‘이중전술’ 시계추를 빨리하며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더라도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신석호 국제부 차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