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무늬영원/한강 지음/310쪽·1만2000원·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사 제공
인간의 고통과 치유는 어쩌면 소설을 이루는 기본적인 테마일 것이다. 한강의 소설이 특별한 것은 그 과정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 변화를 극히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잡아낸다는 것이다. 하루 동안 자란 손톱의 넓이를 알아채듯이.
중편 ‘노랑무늬영원’을 비롯해 단편 6편을 한 권에 묶었다.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단편 ‘에우로파’다. 각각의 소설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듯, 슬픔으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서도 ‘에우로파’가 가장 애처롭게 다가온다.
소설가 한강
읽기가 즐거웠던 것은 무엇보다 한강의 문체가 미려하기 때문이다. ‘문밖으로 빗소리가 추적추적 들려오던 그 오후, 두려워하는 두 입술이 만나던 순간을. 두 사람 모두 입술을 벌리지도 못한 채, 서로의 부드러움이 떠날 것이 두려워 뛰는 심장들을 맞붙이고 있었지요.’(단편 ‘파란 돌’에서) 조심스럽고, 설레고, 불안한 첫 키스의 순간을 그린 장면이다. 이렇게 메모해 두고 잘 보이는 데 붙여 두고픈 문장들이 소설집 곳곳에 숨어 있다. 작가가 한자 한자 공들여 눌러쓴 문장들은 아껴 읽을 수밖에 없다.
아쉬운 점도 있다. 상투적인 이야기 구조가 반복되는 듯하다. 현재 인물의 혼돈과 상실을 그려 준 다음, 이 슬픔의 근원이 되는 과거 사건을 기술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구조가 그렇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땐 한 권의 장편을 읽은 듯한 느낌도 든다.
이번 한강의 소설집은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밥공기와 같다. 오늘도 사람들은 하루분의 슬픔을 푹 숟가락으로 떠서, 힘겹게 넘긴다. 그렇게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