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결혼한 안 씨는 부인과 아들을 낳아 키우며 평탄하게 살았다. 부산의 한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잘나가는 공기업에 취직도 했다. 하지만 1993년 퇴직 후 시작한 건설사업이 내리막길을 타면서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빚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1995년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부인은 실종 신고를 했고 민법에 따라 신고 5년이 지난 2000년 12월 안 씨는 서류상 사망 처리됐다.
유령이 된 안 씨는 사기꾼으로 다시 태어났다. 안 씨를 잡아온 두 남자도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순하게 생겨가지고 진짜 타고난 사기꾼이다”라고 했다. 경찰이 확인한 것은 2009년 이후의 사기행각이다. 안 씨는 사회생활을 하다 만난 대학 동창의 명의를 빌려 경기 남양주시에 껍데기뿐인 건설회사 법인을 차렸다. 이 동창은 안 씨가 ‘죽은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고 대가도 없이 명의를 빌려줬다. 안 씨는 타고난 언변과 회사 명함 한 장만으로도 돈을 투자받았다. 그는 “경북 포항, 경남 사천 일대에 사업단지가 조성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도심형 생활주택 사업이 인기인데 곧 대박이 난다”는 말로 거액을 투자받은 뒤 잠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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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씨는 “사망자로 살아도 불편한 점이 없더라”고 했다. 다른 사람 명의의 건강보험증과 휴대전화를 썼고 12년 동안 불심검문도 당하지 않았다. 운전은 절대로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경찰은 안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14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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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