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초빙연구원
첫째, 협상의 대상으로 알려진 ‘사용 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기술(핵무기 제조와 원전용 연료 제조 등에 사용되는 이중용도 기술)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지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비핵무기 정책을 주요 국가전략으로 삼고 있는 우리는 재처리와 농축기술의 획득 없이 많은 원전을 지금까지도 잘 가동해 왔다. 현재 우리 내부에서 각기 내세우는 이해관계에 혼선이 있는 것 같다. 해외 원전 수출 추진 부서는 수주경쟁력 제고에, 북한 핵 담당 부서는 안보전략의 요소로서 비핵정책 신뢰성 유지에, 학계는 핵연료주기 완성이라는 과학자적 자존심에, 정치권 일부는 대중영합적인 핵 주권 확보 논리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둘째, 한미 협상에서 ‘재처리’ 추구와 관련해 핵 주권을 주장할수록 한미동맹의 신뢰만 손상될 우려가 크다. 결국 원전용지에 쌓여 가는 사용 후 연료 등 핵폐기물 처리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수렴될 것으로 보인다. 핵폐기물 처리 문제에 관한 양국의 협력 방안으로 우리가 제시한 ‘파이로-프로세싱’(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 기술) 외에 다른 방도도 모색할 수 있다. 우라늄 농축 추구는 핵연료 자급자족을 명분으로 하고 있는데, 미국의 원전 연료 공급에 대한 확실한 보장과 다변화된 공급처를 확보하는 공동 노력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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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현재의 국제 추세를 감안해야 한다. 핵무기 감축, 비확산, 핵물질 안전관리, 핵테러 방지, 핵분열물질 폐기조약(FMCT)이 더 강하게 요구되는 국제환경에서 플루토늄 추출, 우라늄 농축의 추구를 주장하는 것은 시대역행적이다. 더구나 북한의 핵개발이 우리의 최대 안보위협이 아닌가. 북한에 핵 포기를 요구하는 당위성과 해결 전략의 바탕이 ‘핵비확산 조약’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 출범하는 신정부가 협상 방안을 새로 짜야 한다. 국가전략적 이해관계의 우선순위와 그에 맞는 협상목표를 명확히 세우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 ‘핵폐기물관리’가 우선 시급한 해결과제라고 한다면 창의적으로 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한미간에 이미 합의된 파이로-프로세싱 공동연구 10년의 기간을 매개로 하는 잠정적 타결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또한 원전 수출 촉진을 위해서는 사양화되고 있는 미국의 원전 산업계와 협력하는 공동 진출 전략이 훨씬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호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초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