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리한 조건 내세우다 재건축 무산 서울 고덕주공 2단지 가보니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위치한 고덕주공2단지 전경. 단지 규모가 2600여 채에 달하고, 공사비만 1조 원을 넘어 관심을 모았던 이 아파트의 재건축사업 시공사 선정 입찰에 건설사들이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침체된 부동산 경기에 재건축 조합원들의 무리한 요구 조건이 걸림돌이 됐다는 분석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부동산경기 침체로 건설회사들이 잇따라 재건축사업 수주를 포기하는 가운데 서울 최대 재건축단지인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2단지의 시공사 선정 입찰이 13일 무산됐다. 소규모 재건축 입찰이 무산된 적은 있지만 공사비만 1조 원이 넘는 4103채의 재건축 프로젝트가 중단된 것은 이례적이다.
16일 낮 고덕주공2단지는 침통했다. 단지를 오가는 주민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중개업소 몇 곳엔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이들은 부동산경기가 침체됐지만 역세권 대단지의 재건축조차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앞날을 걱정했다. 10년째 살고 있다는 L 씨(49)는 “낡은 베란다와 계단 탓에 늘 안전사고를 걱정하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입찰 무산 소식은 아파트 매매가를 바로 끌어내렸다. 고덕동 부자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 무산 소식에 호가가 1500만∼2000만 원씩 떨어졌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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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에 빠진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런 조건은 과욕이었다. 지난해 12월 입주한 재건축아파트 고덕아이파크(옛 고덕주공1단지)는 2009년 분양 때 m²당 분양가가 757만∼909만 원이었지만 현 시세는 575만 원대로 뚝 떨어졌다.
무상지분 150%도 마찬가지다. 이를 적용하면 40m²의 토지 지분을 보유한 조합원은 60m² 규모의 아파트를 무상으로 받는다. 대형건설업체 A사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2000년대 중반에도 재건축 무상지분이 120∼130%였다”고 말했다. 높은 분양가도 걸림돌이었다. 고덕지구와 가까운 경기 하남미사보금자리주택(공급물량 4만 채)의 분양가는 m²당 288만 원대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주민들은 사업조건을 건설사의 요구 수준대로 낮춰 조기 진행하자는 측과 현재의 조건을 고수해야 한다는 측으로 나뉘어 갈등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조기 추진을 요구하는 측은 시공사에 유리하게 무상지분과 대물변제 조건을 바꿔서라도 사업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변우택 조합장은 “대물변제 조건을 고집해서는 어떤 회사도 시공을 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건 완화 방침을 밝혔다. 반면 일부 주민은 ‘우리의 재산권을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지킴이’라고 부르며 독자 행동에 나설 태세다. 이들은 대물변제와 무상지분 150% 유지 조건을 반드시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고덕주공2단지처럼 조합과 시공사의 눈높이가 달라 재건축이 지연되거나 일시 무산되는 곳이 적지 않다. 경기 과천시 과천주공6단지는 올 2월 조합이 요구한 ‘확정지분제’ 탓에 시공사 선정이 무산됐다. 강남구 논현동 청학, 서초구 잠원동 한신 4차 등도 절차상 문제나 조합과 시공사 간 견해차 등으로 사업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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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