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무 대한토목학회장 서울대 교수
우리 기업들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미국과 일본, 유럽의 경쟁업체를 따돌리고 해외건설 및 자원개발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한 것은 이런 분들의 뜨거운 열정과 희생정신에 힘입은 것이다. 해외건설의 첨병들은 중동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오지와 험한 지형을 누비며 발전소와 철도, 도로 등 건설사업에 매달려 왔다.
그 과정에서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치안이 불안하거나 내전이 벌어지는 나라에서는 감금, 약탈, 납치 등 신변의 위협을 무릅써야 했다. 그러면서도 상대국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현장을 지키며 공사를 강행했던 경우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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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설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건설 시장은 우리 경제의 유일한 탈출구일 수 있다.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 5000억 달러라는 눈부신 금자탑의 위용이 그것을 말해준다. 우리 건설업체가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 이래 피와 땀을 흘리면서 쌓아올린 실적이다.
해외건설 수주액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06년 18조 원대에서 지난해에는 65조 원 규모를 넘어섰으니 5년 만에 무려 3배 이상으로 급증한 셈이다. 해외수출 품목도 이미 반도체, 자동차, 조선을 따라잡고 단일품목 1위를 지키고 있다. 국내건설 규모에 비해서는 수주액이 60%에 불과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추세로 미뤄보면 해외 부문이 국내 부문을 조만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참사가 빚어진 페루의 수력발전소 공사도 총사업비가 1조9000억 원이나 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안데스산맥 주변 남미 국가들에 한국의 수자원 토목건설 기술을 수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은 해외건설 산업전선의 순교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토목건설 사업을 비하하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해 무척 유감이다. ‘삽질경제’ 또는 ‘토건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토목건설업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얘기도 들린다. 몇몇 토목건설사업이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괄적으로 폄하하는 시각은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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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국내외 건설사업 현장에서 70만 명에 이르는 건설인이 불철주야 뛰고 있다. 우리 경제를 위하고 국가를 위한 이런 노력은 계속 이어져야 하고 또 이어질 것이다. 이번 페루 헬기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고현무 대한토목학회장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