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뜰 때면… 손을 감싸는 ‘천년의 감촉’ 잊지 못해
《 “아버지 때는 좋은 한지(韓紙)를 만들면 됐지만 지금은 소비자가 원한다면 어떤 한지든 만들어야 하죠. 그래서 문양을 넣거나 구멍을 내기도 하고 표면을 오돌토돌하게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요. 아버지는 ‘엉뚱한 짓 한다’며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시지만요. 하하….” 》
11일 오후 경기 가평군에 있는 장지방에서 만난 장성우 실장은 “크기와 두께, 염색 등에 따라 한지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특히 얇은 한지는 마치 아기 피부와 같이 매끈하다”고 했다. 현재 장지방이 만드는 한지는 200종에 이른다. 가평=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10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한지의 원료는 국내산 닥나무 껍질이다. 장지방에서는 닥나무를 찌고 불리고 긁어내고 삶고, 고르고 뜨고 말리고 두드리는 모든 과정을 오로지 ‘손’만으로 해낸다. 닥나무 채취에서 한지 완성까지 꼬박 2주가 걸린다.
장 실장은 종이 개발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지만 다음 두 가지 원칙은 꼭 지킨다고 했다. 하나는 닥나무 외 다른 원료를 쓰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닥나무가 가진 물성을 파괴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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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천연 닥나무와 잿물을 쓰셨 듯이 저도 그렇게 해요. 그게 가장 한지에 맞거든요. 다만 초지(抄紙·종이뜨기)할 때 (종이) 섬유를 부어 뭉치게 만들거나 흩뜨리는 등의 변화를 추구하는 겁니다.”
장 실장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왔지만 가업을 이을 걸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1년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제대한 후 대학에 복학하지 않고 한지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딱 5년만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당시 한지 공예가 인기를 끌면서 수요가 급증했어요. 한지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일본이나 중국 등에서도 사러왔죠. 일도 재미있고 사업도 잘되니 정말 좋았어요. 지금은 그저 ‘이게 내 인생’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죠.”
중요무형문화재인 아버지 장용훈 옹.
가평=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