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사실 중국과 자유무역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막아내기에 급급한 게 대부분 국가들의 실정이다. 그러나 원유나 원자재, 광물자원 교역을 제외하고 중국과의 교역에서 지속적으로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드문 나라가 우리나라다. 2003년 하반기부터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부상했다. 작년에는 480억 달러의 대(對)중국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냉전체제하에서 총부리를 겨누던 양국 관계는 이미 불가분의 단계에 들어섰다. 양국을 오가는 비행기는 52개 노선에 주당 840편에 이르고, 세계 중국어자격시험 응시자의 60% 이상은 한국인이다.
중국과의 FTA 협상은 쉽지 않을 것이다. 농수산물 분야는 물론이고 현재 수입이 많은 대부분의 산업부문은 민감품목 보호를 요청해 우리 정부는 2단계 협상이라는 고육지계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미국, EU와 FTA를 타결한 우리의 협상 역량과 중국 지도부의 통 큰 리더십을 감안하면 협상 타결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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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일본은 보다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한중일 FTA에 집중할 공산이 크다. 특히 한중 FTA 타결이 현실화하는 시점에서는 이를 견제하는 차원에서라도 한중일 FTA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되기에 동아시아 경제통합이 한층 구체화될 수 있다.
다음 단계로는 대만의 한중일 FTA 참여가 예상된다. 한중일 FTA가 체결되는 시점에는 중국과 대만 간 FTA도 본격화돼 한국과 일본의 대만에 대한 FTA 요구가 높아지게 된다. 더욱이 한중 또는 한중일 FTA 이후에는 중국이 대만의 FTA를 용인할 수 있는 정치적 여지가 커지게 된다.
마지막 단계로 북한과의 FTA가 대두된다. 북한 개혁·개방의 선결요건이자 산업화의 디딤돌로 남북한 FTA는 통합된 동아시아시장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이를 토대로 하는 북한의 경제체제 안정이야말로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의 초석이 된다.
그러나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향한 역사의 물줄기에 놓여 있는 걸림돌도 만만치 않다. 날로 고조되는 동아시아 삼국 간의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분쟁과 이에 편승한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은 지난 역사의 쓰라린 경험을 교훈보다는 굴레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동아시아 삼국 모두 겪고 있는 정치적 지도력 약화문제는 역사의 전환기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비전 제시와 국민적 지지 확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단초를 풀어갈 우리의 차기 지도자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도 이런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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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