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종 법’ 국회 통과 지켜본 이국종 교수
우여곡절 끝에 2일 국회에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과속차량 과태료 수입의 20%인 1600억 원을 응급의료선진화 기금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을 2017년까지 5년 연장하는 게 주요내용이다. 이로써 올해 400억∼500억 원을 투입해 전국 5곳에 중증외상센터를 건립하기로 한 정부의 계획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을 때 법안 통과를 강력히 주장했던 이 교수였기에 소감이 궁금했다. 그는 법안을 만들기 이전에도 열악한 한국의 중증외상치료 현실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그러나 이 교수의 첫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이 교수는 이제야 정책을 뒷받침할 초보적 여건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오히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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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이 교수의 질타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1월 삼호주얼리호 피랍사건을 계기로 열악한 의료 환경이 지적되자 보건복지부는 대형 중증외상센터 6곳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부처 간 협의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이어 100억 원짜리 20곳을 짓겠다고 했다가 80억 원짜리 20곳을 짓겠다고 하는 등 계획은 오락가락했다. 한참을 표류한 끝에 지난해 10월에야 전국에 센터 16곳을 짓는 방안을 최종 확정했다.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이 힘도 없고 돈도 없어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니까 계획이 겉돌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한국 병원은 낮과 밤이 전혀 다른 모습이란 걸 한국인만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인력과 장비가 없는 대한민국의 야간 의료수준은 나이지리아만도 못하답니다.”
응급의료선진화 기금은 △119 구급차 정비 △도서벽지 응급환자를 수송하기 위한 헬기사업 △미숙아 응급의료 지원 사업으로도 활용된다. 이 교수는 이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응급 환자를 치료하고 수술할 병원입니다. 주변 인프라만 잘 닦아놓으면 뭐합니까.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다친 사람이 새벽 2시에 병원 돌다가 죽는 일을 본 적 있습니까. 저희는 매일 봅니다. 지금 전쟁이에요. 즉각 병원으로 이송해 즉각 처치를 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는 전혀 진척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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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보는 것은 의사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의사들이 이번엔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