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제공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정통을 한 몸에 갖고 있었던 셈이다. 친구인 우암 송시열이 한사코 기호 예학의 칼날로 시대를 재단하려 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러나 우암을 사계문하에서 공부하도록 이끈 사람도 동춘당이다. 어떻게 이런 두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그것도 궁금하다. 대방무우(大方無隅),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듯이 동춘당은 그릇이 큰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초연물외(超然物外).’ 별당인 동춘당이 있는 곳에서 계족산성 쪽으로 길을 잡아 계류를 따라 가면 바위에 쓴 동춘당의 글씨가 나타난다. 획이 정확하면서도 활달하다. 세속의 바깥에 있고, 인위적인 것을 벗어나 있다는 말이다. 그 글씨에서 눈을 돌리면 대전 대덕구 비래동에 있는 옥류각(玉溜閣)이 바라다 보인다. 물이 흐르는 가파른 계곡을 디디고 호쾌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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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옥류각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모두 여섯 칸으로 계곡의 하류 쪽에서 왼편으로 ‘田’자로 네 칸의 마루를, 오른편으로 두 칸의 방을 들이고 있지만, 원래는 방이 없이 다 마루로 짜인 정자다. 시원스러운 계류의 흐름을 타고 앉아 온 천지사방을 향해 툭 터져 있어 계족산의 자연을 이 마루에서 감상하게끔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옥류각은 녹음이 지면 녹음으로, 단풍이 지면 단풍으로, 눈이 내리면 눈에 묻혀 물외(物外)를 이루어, 이 세상에 있는 집이 아닌 집이 되었을 것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