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청 제공
계곡에 세워진 정자이니만큼 볼 게 많은 계곡 쪽으로 정면 세 칸을 마주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을 때 계곡과 등을 진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같이 앉을 때는 건물의 길이 방향으로 서로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설계자는 이 불평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 과감하게 측면 두 칸을 계곡으로 향하게 했다. 그러고 보니 계곡에 등을 진 사람이 없이 모두 평등하게 계곡 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언제든지 산수를 감상하게끔 되었다.
따라서 누정에 오르는 진입도 계곡을 보면서 이루어지게 된다. 두 칸의 중심에 계단을 두면 반드시 기둥과 부딪히니 오른쪽 옆 칸의 중심으로 계단을 뺐다. 그리고 그 위에 현판을 걸었는데 한 칸에 걸리는 현판답게 크기도 적당히 작다. 실로 빼어난 안목이다.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계획되었고, 어느 것 하나 명분에 치우쳐서 무리하게 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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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정이 있는 봉전마을은 일두 정여창의 처가가 있었던 곳이다. 일두는 처가에 들를 때마다 자주 이곳 영귀대에서 쉬곤 했는데 이를 기려 거연정을 지은 화림재 전시서의 후손들이 1802년 일두가 자주 쉬던 영귀대에 정자를 세웠다. 영귀대라는 큰 너럭바위가 이 건물의 주초가 되었다. 그래서 군자정에는 주초가 없이 누 아래 기둥들이 터벅터벅 바위 위에 발자국을 찍듯이 놓여 있다. 호쾌한 수법이다. 화림동 계곡에서 가장 빼어난 정자다. 건축가가 누군지 그리워진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