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평택대 교수 소설가·문학평론가
편집증적 집착이 사생팬 폭행 불러
‘스타’란 팬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온전히 성립된다. 사랑받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팬이 없다면 스타도 없다. 그런데 그 사랑이 지나쳐 괴롭힘(스토커)의 방식으로 나타난다면.
한국 사회에 팬덤문화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라 할 만하다. 팬덤문화란 추종자들이 스타에게 일방적으로 종속되는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활동 의미를 찾는 것을 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취향과 선택을 스타와 동일시하고자 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들이 얻는 것은 자신들의 취향과 선택을 차별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스타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자 한다. 배용준을 흠모하는 일본 여성들이나 남성 아이돌그룹에 열광하는 10대 여성팬들.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팬들은 스타를 통해 청춘이나 삶의 의미, 희망을 찾고자 한다. 계급적 지배질서에 종속되기를 원하는 이 끔찍한 현실에서 잠시 유예될 수 있는 시간 아닌가.
팬들의 스타사랑도 지나치면 안돼
실제 팬덤은 대중문화 개혁에 앞장서기도 했다. 2001년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운동이나 한국음반저작권협회의 무책임한 저작권 대행을 바로잡는 개혁에 앞장섰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개인의 감정이 과도한 집착으로 분출되고 극도로 흥분되는 경우도 있다. 이 사건이 그 실례다. 우리 시대가 느끼는 산만한 불안이 응축된 사건이었다. 사생팬들이 잃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오직 편집증적인 집착만이 남는다. 사생팬들은 스타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자기 정체성을 위한 인정투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의해 규정되는 자신은 허위의 자기일 뿐이다. 유명인이나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토크쇼에서 사생활을 스스로 유포한다. 위험수위까지 폭로하기도 한다.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공을 위해 사를 희생하는 것이 각광받는 시대다. 하지만 자기 사생활 과잉노출로 잃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너 자신을 지키는 일, 너 자신을 찾는 일은 하나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게 할 것이다. 당신 자신을 지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