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서 살며 이웃 돕는 박영록 前의원 ‘정부 사과 - 땅 반환’ 국회에 청원서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려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박영록 전 국회의원은 11일 “행정부가 입법부를 유린한 과거에 대해 국회가 나서서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1일 국회에서 만난 박영록 전 국회의원(89)은 31년간의 아픔을 곱씹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20년간 강원도지사와 4차례 국회의원을 지내 한국 정치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박 전 의원은 1980년 7월 신군부에 상당수 재산을 몰수당했다. 당시 23만여 m²(약 7만 평)의 땅을 모두 빼앗긴 박 전 의원은 지금도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13m²(4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본보 2006년 5월 2일자 A1면 참조
A1면 [전직 국회의원들 어떻게 사나]금배지 뗀 생활 ‘극과 극’
박 전 의원은 최근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당시 신군부가 저지른 불법 감금과 고문에 대해 정부가 사과하고 빼앗긴 땅을 돌려달라는 취지다. 이 청원서에 대한 국회의 결의안 채택 여부는 조만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 38세 때 강원도지사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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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에 그는 눈엣가시였다. 5·18민주화운동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80년 7월 18일 박 전 의원은 갑자기 들이닥친 젊은 남자 4명에 의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갔다. 37일간 불법 감금 상태에서 고문을 받은 그는 강압에 못 이겨 국회의원 사퇴서를 제출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야산에 있는 6000만 원짜리 돌무더기 땅도 빼앗겼다.
1980년 8월 20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합수부는 박 전 의원이 불법정치자금 4756만 원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18억 원 상당의 토지를 매입해 부정축재를 했다고 발표했다. 애국공원을 만들기 위해 세비를 아껴 사들인 6000만 원짜리 땅값을 30배나 부풀려 ‘파렴치한 정치인’으로 낙인을 찍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
○ 9차례의 재판
박 전 의원은 1992년 서울민사지법에 빼앗긴 땅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합수부는 자신들이 선임한 변호사에게 토지소유권을 위임하게 한 뒤 제소 전 화해(소송을 내기 전 법관 앞에서 화해를 성립시키는 것) 방식으로 땅을 빼앗았다. 이 땅은 1986년 6000만 원에 서울시로 넘겨졌다. 그러나 1, 2심 재판부는 “법관 앞에서 소유권을 넘긴 땅을 되찾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는 곧바로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에선 다른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박 전 의원이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변호사에게 권리를 위임했다”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은 1997년 확정됐다. 박 전 의원은 다시 한 번 소송을 냈다. 소유권이전등기의 효력이 사라졌으니 국가와 서울시가 땅을 돌려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2001년 대법원은 박 전 의원의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의원이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였음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땅을 넘긴 뒤 10년의 제척기간이 지난 데다 땅을 사들인 서울시가 ‘선의의 제3자’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땅을 되찾기 위한 9차례의 재판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컨테이너에 사는 박영록 전 국회의원의 삶을 조명한 본보 2006년 5월 2일자 A1면 보도. 박 전 의원은 이후 이어지는 성금과 식료품 등을 불우이웃에게 모두 기부해 ‘대한민국 청렴정치인 대상’과 ‘황희 정승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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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