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철 사직여고 교장
입시 때문에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이라도 읽으면 좋으련만 하나같이 들떠 독서 따위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오전 수업이라도 해 보려고 담임과 대책회의를 몇 번이고 해 보지만 수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자습이라도 해서 내실을 기하고자 여느 때보다 빈번하게 교실을 순회하지만 난장판처럼 변해버린 교실은 차라리 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이때쯤이면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책과 평소 사용하던 생활용품을 죄다 버린다. 대학 가서도 볼 수 있는 콘사이스도 국어사전도 던져 버리고, 집에서 입을 수 있는 성한 체육복까지 아무런 가책 없이 마구 버린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촌놈인 나는 20리를 매일 걸어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버스 한 정류장도 걷지 않는 우리 학생들에 비하면 나는 하루 네 시간을 운명처럼 걷고 또 걸었다. 비 오는 날은 정말 학교 가기 싫었다. 몇 번을 고친 낡은 우산은 세찬 바람이 있는 날이면 동구 밖을 벗어나기 전에 무용지물이 된다. 오뉴월인데도 비 맞고 학교에 도착하면 온몸은 한기가 들고 오들오들 떨린다. 그런데 신기했다. 시내버스 타고 온 내 앞뒤 친구들의 옷은 물기 하나 없이 말짱했다.
그날도 청대 같은 비를 맞고 학교에 힘들게 간 날로 기억한다. 조례 들어오시는 담임선생님의 안색이 예사롭지 않다. “저번 주까지 공납금 틀림없이 납부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아직까지 안 낸 놈 일어나! 당장 가져와!”
담임선생님은 ‘공납금 납부 상황’이란 막대그래프까지 보이며 흥분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나는 무섭고 부끄러워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왔다. ‘집에 가도 아침에 없던 돈이 있을 리 만무하고 새벽같이 20리 길을 비 맞으며 왔는데 어찌 돌아가란 말인가.’ 아무런 저항할 힘도 없던 나는 땅바닥에 흥건히 고인 물과 돌을 번갈아 차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웃집 누에고치 날품을 나가셨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 안 가! 학교 가기 싫어!” 몇 년 전 어머니는 세상을 뜨셨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는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교장이 돼 네 번째 수능을 맞이한다. 수능이 끝나면 3학년 교실은 예외 없이 또 술렁일 것이다. 내년 2월 졸업 때까지 들뜬 학생들을 억지로 붙잡아야 되는 담임들은 또 비지땀을 흘릴 것이다.
김명철 사직여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