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두기-김은경, 그림 제공 포털아트
문제의 음반은 국악 전문 음반사에서 제작한 ‘정가악회 풍류Ⅲ-가곡’입니다. 음반에 수록된 가곡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지은 시를 관현반주에 맞춰 부르는 문인악의 하나로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작품입니다. 절묘한 것은 음반의 녹음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관가정의 대청마루에서 이루어져 현장의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가 고스란히 가미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음반은 국내에서 8장 팔리고 미국에서 20장이 팔려 도합 28장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것을 만든 음반사 대표는 15년 동안 전통 가곡을 찾아 전국 팔도를 누비며 녹음 원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몇 해 전 ‘노름마치’란 책이 출간되어 초야에 묻혀 살던 전통 명인들이 현재로 되돌아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적이 있습니다. 무당, 기생, 광대 등 사회 최하층 신분의 굴레를 견디며 현대사의 이면으로 사라져가던 그들을 찾아 전국을 누비며 발품을 팔고 마음을 다해 그들을 현재의 무대로 되돌아오게 한 것도 역시 전통공연을 되살리고 싶어 한 한 연출가의 눈물겨운 애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케이팝이 전 세계를 휩쓸고 빌보드에 케이팝 차트가 생겼다며 자부심을 느끼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네스코에 등재됐음에도 불구하고 자국민에게 외면당하는 전통 가곡을 부르는 국악인 중에는 평생 음반 한 장 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유명을 달리한 숱한 예인과 명인의 삶에 우리는 너무 무심하고 초연합니다.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음반이 8장 팔리는 현실, 우리의 뿌리를 복원하기 위해 몸과 마음과 청춘을 바쳐 뛰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한없이 부끄럽고 또한 감사합니다.
‘케이(Korea)’가 없는 팝은 뿌리 없는 노래이고 근거 없는 선율입니다. 우리의 전통, 우리의 뿌리가 한데 어우러져 케이팝이 아니라 케이뮤직, 케이아트, 케이컬처가 더불어 만개하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 이 순간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머리 조아리며 큰절을 올립니다.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