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생 조기입학
《“우리 애는 1월생에다가 키도 커서 동갑내기들이 시시하게 느껴진대요. 학교 다닐 맛이 나려면 경쟁할 만한 친구들이 옆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 아들은 워낙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 주는 문제마다 곧잘 풀어요. 학교에 일찍 들어가도 잘 따라갈 것 같은데….”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보며 조기입학을 한 번쯤 생각해본 부모가 많다. 아이의 빠른 성장, 눈에 띄는 학습능력이 이유일 때도 있고, 맞벌이 부부로 아이를 도맡아 키우지 못할 상황이 이유일 때도 있다. 그래도 고민이다. 조기입학이 과연 내 아이의 미래를위한 최선의 선택일까. 결론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른다’이다. 이럴 땐 자녀를 이미 조기입학시킨 선배 맘과 현직 교사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 엄마가 아이의 생활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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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학교에 들어간 초기에는 도시락 속 수저며 신발, 심지어는 책가방을 여기저기 흘리고 돌아오기도 했어요. 다른 애들은 안 그런다는데…. ‘이런 게 어린 것이구나’ 느꼈죠.”(차 씨)
부모는 특히 아이의 지적능력이나 학습능력이 또래보다 도드라지게 좋을 경우 학교에 1년 먼저 보내볼까 생각하게 된다. 이때 부모들이 놓치기 쉬운 게 바로 생활적인 면이다. 초등 1학년의 경우 학교에서 학습적으로 새롭게 배우는 게 그리 많지 않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이에게는 훨씬 큰 과제다. 차 씨는 “조기입학한 첫해에는 아이도 부모도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하나하나 챙겨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조기입학을 신중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발육상태의 차이를 심리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가
리더십은 원만한 교우관계 속에서 또래들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아이의 리더십을 키워주고 싶다면 조기입학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남자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초등 저학년 남아들 사이에서는 키로 서열을 나누는 특성이 있어 아이의 발육상태가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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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이런 차이는 아이 성향에 따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의견도 있다. 올해 딸을 사립초등학교에 조기입학시킨 이모 씨(40·여·경기 고양시)는 “아이가 8세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키가 크고 또래나 언니들과도 두루 잘 지내기에 조기입학을 시키게 됐다”며 “초반에 선생님께 ‘아이가 위축될 수 있으니 다른 아이들에겐 8세인 것으로 알려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이후 특별한 문제를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아이가 적응할 수 있는 성격인가
단순히 아이의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조기입학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아이 스스로가 학교생활에 열의가 있는지, 한 살이 적다는 사실에서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의사다.
올해 딸을 조기입학시킨 함모 씨(37·여·서울 양천구)는 “아이의 요청으로 입학을 서두르게 됐다”고 말했다. “말하는 수준이 높고 한글 깨치는 속도가 빨라서 4세 때부터 유치원에서 월반을 시켰어요. 자연스럽게 한 살 위 언니, 오빠들과 친구로 지내서 그런지 일곱 살을 앞두고 학교이야기를 먼저 꺼내더라고요.”(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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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목초등학교 이은경 교사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습능력보다 사회성이 더 중요하다”면서 “사교성이 좋고 두려움 없이 이것저것 잘 시도해보는 성격의 아이가 조기입학하면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는 제 아이를 가장 잘 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면 자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이럴 때는 조기입학을 결정하기 전 ‘학습준비도 검사’를 통해 아이의 발달정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좋다. 또한 1년 이상 아이를 가르쳐본 유치원 선생님의 의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입학 전 주변 초등학교 견학을 시켜보면서 아이가 초등생이 되는 것에 흥미를 갖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박주선 기자 jspark@donga.com
■ 만약 심사숙고 끝에 아이를 조기입학시켰다면?
학부모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항에 유념해야 한다고 선배 맘들은 입을 모은다.
[1] 아이의 정체성을 8세로 심어줘라
조기입학하면 그간 유치원에서 모두 “형”“오빠”“누나”“언니”라고 불렀던 상급생과 자녀가 돌연 동급생이 되는 상황에 봉착한다. 기존 호칭대로 간다면 친구들 사이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아이도 힘들게 된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여덟 살이라고 정체성을 확실히 인지시키는 것이 좋다.
[2] 선생님을 포섭(?)하라
원만한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선생님의 협조가 필요하다. 입학 전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조기입학한 취지를 충분히 설명한다. 학기 중간에도 선생님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아이의 평소 생활,친구들과의 관계 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3] 감정 표현하는 법을 알려줘라
학교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공간이다. 친구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표현하는 방법, 선생님께 말하는 법 등을 미리 알려주는 게 좋다.
[4] 단정 짓지 말고 기다려줘라
7세든 8세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선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다. 8세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실수를 ‘조기입학 때문인가?’ 라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