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욱 논설위원
클린턴 캠프는 그가 살아온 길을 조명하기로 했다. 홍보영상물 ‘맨 프럼 호프(Man from Hope)’는 당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던졌다. 희망을 뜻하는 ‘Hope’는 공교롭게도 그가 태어난 아칸소의 마을 이름이었다. 그는 위기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1996년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밥 돌은 유머가 많은 정치인이었지만 유머를 모르는 지루한 노(老)정객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앨 고어도 기자들 사이에선 가정적인 인물로 정평이 났지만 대중에게는 차갑고 인간미 없는 관료적 모습으로 각인됐다. 두 후보는 모두 본선에서 쓴잔을 마셨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최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비판하면서도 “오랫동안 지지세력을 유지해온 것을 보면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봐야 한다. 수첩공주니 콘텐츠가 없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가당찮은 얘기”라고 말했다. ‘박근혜=수첩공주’라는 야권의 단골 메뉴를 접고 냉정히 보자는 얘기다. 박 전 대표가 쌓아온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도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측근들 사이에서 ‘박 소장’으로 불리는 동생 지만 씨의 어느 저축은행 연루 의혹에 대해 “본인이 확실하게 말했으니 그걸로 끝난 것”이라고 잘랐다. 일각에선 권위주의적 이미지를 떠올렸다. 일부 친박(親朴) 인사들도 “박 전 대표가 굳이 그런 식으로 얘기를 했어야 했나”라고 걱정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운동권 투사였지만 그 후 옥스퍼드대를 나온 대학교수 출신이다. 4·27 경기 분당을(乙)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손 대표의 ‘합리적 중도 이미지’를 만든 밑거름이다. 하지만 매사 너무 재는 듯한 부정적 인상도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손 대표는 흡인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한때 복지부 공무원들로부터 ‘베스트 장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지지그룹과 안티층이 확연히 갈리는 갈등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한나라당의 김문수 경기도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정몽준 전 대표는 강력한 인상 자체가 구축되지 않은 감이 있다.
정치컨설턴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조지프 나폴리탄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리얼리티(reality·실체)를 중시하라. 나는 언제든 (대중이 느끼는) 퍼셉션(perception·인식)에 의존할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