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FTA교수연구회 회장
생계형 반대론자들의 저항을 완화시켰는가, 또 생산자원을 보다 경쟁력 있는 부문으로 원활하게 이전시키는 데 도움이 됐는가. 이 두 가지는 무역조정지원제도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잣대다. 이 점에서 한국의 무역조정지원제도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제도 도입 이후 지난 4년간 단 몇 건에 불과한 사례는 유럽연합(EU)과 미국 같은 거대경제권과의 FTA가 발효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 FTA가 발효되기 전에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하지 않는다면 허울 좋은 제도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무역조정지원제도의 바람직한 개편 방향은 무엇일까. 첫째, 지원 내용과 대상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지식경제부 산하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주도하고 있는 무역조정지원사업은 생산성이 취약한 한계기업의 전업이나 폐업 유도가 아닌 기업의 운영자금 지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무역조정지원’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중소기업 육성책’에 가깝다. 한계기업을 온존시키는 방식은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경제의 활력을 잠식할 우려가 크다.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잠시 영양제를 놓는 것으로는 곤란하다.
무역조정지원제도를 50년 이상 운영해오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이를 실패한 방식으로 판단해 1986년 폐기 처분했다.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기 쉬운 기업 지원책보다는 근로자 지원책, 특히 실직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대가 초점이다. 기업 지원은 구조조정을 위한 컨설팅서비스에 국한하고 그 비중 또한 전체 예산의 2%에도 못 미치는 그들의 경험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광고 로드중
셋째, 지금의 행정편의주의적 선정 방식을 간소화하여 피해 기업이 쉽게 지원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문턱을 과감하게 낮추어야 한다. 기업의 행정부담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실효성 있는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농업 분야에 대한 무역조정지원과 제조업에 대한 지원이 따로 운영되는 현 시스템은 분야 간 형평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도 운영에 관료집단의 이해관계가 반영돼 세금을 낭비할 우려가 높기 때문에 운영 주체를 FTA 국내대책본부로 일원화하는 게 합당하다.
FTA 협상이 끝난 뒤 국회 비준동의 때마다 논란이 되는 피해산업 보완 대책에 대한 쓸 만한 기본틀로 작동하려면 분절화되고 관료화된 무역조정지원제도는 시급히 손질되어야 마땅하다. 큰 비행기를 띄우려면 큰 활주로가 필요하다. 우리 활주로는 턱없이 좁고 울퉁불퉁하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FTA교수연구회 회장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