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에 쫓아온 中… 더 멀리 내빼는 日
인천에서 귀금속 도금업체를 운영하던 A 씨는 4년 전 인천의 공장을 접고 중국으로 향했다. 폐수처리시설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그에게 한 중국인 투자자가 찾아와 “환경 규제도 약하고 지방정부에서 땅도 무상으로 빌려준다”며 중국에 공장을 세우자고 권했고 그는 미련 없이 중국으로 떠났다. 도금 기술을 현지 직원들에게 가르치며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그는 지난해 말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국 지방정부와 투자자의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이다. A 씨는 “처음에 적극 지원해주던 지방정부와 파트너가 공장이 본궤도에 오르자 직원복지, 환경설비 등 갖가지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며 “그들이 요구하는 환경 설비를 갖출 능력이 없고, 파트너도 더는 도와주지 않아 쫓기듯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신주식 전 도금협회장은 “A 씨와 비슷한 일을 당해 기술만 전해주고 빈손으로 돌아온 경우가 2, 3년 전부터 부쩍 늘었다”며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중국 업체의 도금 실력이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 ‘샌드위치’ 한국
한중일 3국의 ‘뿌리산업’ 기술력은 일본-한국-중국 순으로 다른 산업과 비슷하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3국의 뿌리산업 6개 분야 기술력은 일본을 100으로 놓고 봤을 때 한국은 88.5, 중국은 71.5 수준이다. 그러나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면서 한중의 간격은 점차 좁혀지고 있고, 일본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으로 더 멀리 달아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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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2005년 ‘모노쓰쿠리(장인정신) 국가비전 전략’을 수립하고 20개 뿌리산업 기반 기술을 선정해 연구개발을 집중 지원했다. 그 결과 지난해 일본의 정밀주조, 고정밀 가공, 유리렌즈 가공 등 기술 선도적 뿌리산업의 기업은 총 2994개, 연매출은 35조 원에 이른다.
인력 고령화 문제도 일본은 기술력으로 풀어냈다. 일본 나가노 현 소재 가시야마금형공업은 종업원 95명의 중소기업이지만 평균연령이 29세에 불과하다. 이 회사는 ‘1μm의 가공 정밀도’를 목표로 첨단 기술을 활용해 초정밀 휴대전화 금형, 의학용 금형을 만든다. 박균명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뿌리산업추진단장은 “기술이 첨단화되니 젊은이들도 관심을 갖는 것”이라며 “가시야마금형은 뿌리산업도 전문화, 고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한국, ‘3D’를 ‘ACE’로
정부도 지난해 ‘뿌리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을 수립하고 뿌리산업 육성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정부 뿌리산업 지원의 큰 틀은 뿌리산업을 위험하고(Dangerous), 더럽고(Dirty), 힘든(Difficult) ‘3D’ 산업에서 자동화되고(Automatic), 깨끗하고(Clean), 쉬운(Easy) ‘ACE’ 산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환경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뿌리산업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부산 녹산공단,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 인천 남동공단에 친환경 설비를 갖춘 아파트형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또 인력 부족 및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600여 명인 뿌리산업 관련 마이스터고 재학생을 2012년까지 1000명 정도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지식경제부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설계, 시제품 제작 등 ‘제조공정 IT 융합 지원’ 사업도 4개 권역의 ‘뿌리산업 IT 융합지원단’을 통해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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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뿌리산업 관련 기업들이 뽑은 정부 지원이 시급한 분야는 생산설비 지원(44.1%), 기술인력 확보(24.2%), 대·중소기업 동반성장(12.8%)의 순이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십 년을 버텨온 한국의 뿌리산업은 제대로 된 지원만 있다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갈 저력이 있다”며 “장기적인 대책과 함께 당장 뿌리산업 관련 기업들의 생존 걱정을 해결해줄 단기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