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은행들 “재벌 ‘묻지마 대출’ 없앨 것”
○ 평가시스템 수정 불가피
은행들은 지금까지 대기업 계열사가 부실하더라도 ‘그룹의 지원이 있으면 재무유동성이 좋아질 것’이라는 암묵적 보증에 기대어 대출을 해줬다. 하지만 올해 들어 대기업의 부실 건설사 꼬리 자르기 행태가 잇따르면서 은행권에서 연일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A은행의 여신담당 부행장은 “그룹과 은행의 신뢰가 깨진 만큼 계열사에 대한 평가에서 가산점을 주는 관행은 없어질 것”이라며 “꼬리 자르기를 한 그룹의 ‘부정적 평판’도 대출심사 때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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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은행 여신담당자는 “대기업 계열사에 대한 평가시스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며 “금융당국이 부실 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한 것처럼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진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 건설업에서 대출을 먼저 회수하려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일부 그룹이 부실 계열사 지원을 거부한 것에 대해 ‘꼬리 자르기’라며 부도덕한 행태로 몰아세우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주주에게 무한 책임을 지라는 것은 억지에 가까운 주장이라는 것. 재계 관계자는 “계열사 부실을 끌어안다가 그룹 전체로 부실이 번지면 국민경제에 더 큰 악영향이 미친다”며 “정부가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 체제를 권유하는 것도 이 때문 아니냐”고 반문했다.
○ 외환위기 이후 달라진 갑을관계
재벌과 은행의 공존관계가 이처럼 갈등관계로 바뀌게 된 시초는 한솔건설이다. 한솔그룹의 계열사인 한솔건설은 지난해 10월 유동성 위기를 겪다가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에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우리은행은 그룹 차원의 지급보증을 요구했으나 한솔그룹이 추가 지원을 거절했다. 워크아웃이 불발되자 한솔건설은 결국 올해 초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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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감원 “LIG건설 CP 기습발행 조사” ▼
LIG손보 정기검사 앞당겨 내주 실시
한편 금융감독원은 당초 5월로 예정된 LIG손해보험에 대한 정기검사를 앞당겨 다음 주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이번 검사에서 금감원은 LIG건설에 대한 LIG손보의 채권 규모와 계열사 부당 지원 여부 등을 살펴볼 것으로 알려졌다. 또 LIG건설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발행한 기업어음(CP)에 대해서도 조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CP를 매입한 투자자들이 선의의 피해자가 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투자자 민원이나 진정이 들어오는 즉시 CP 발행과정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