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현실 잊게 해주고 가족-동료와 트렌드 소통”
《스마트폰으로 영상물을 들여다보며 엉엉 울고 있다. 출퇴근길에도, 회사에서도, 퇴근 후 침대에 누워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선 때로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과 같이 보면서 눈물 콧물을 흘린다. 40대 중년 남성 얘기다. SK텔레콤은 최근 영상 콘텐츠 플랫폼 ‘호핀’을 광고하면서 연령대별로 영상물 소비 패턴을 달리해 보여준다. 20대는 남녀가 나란히 영화를 보는 장면이다. 30대는 남성이 코미디물을 웃으면서 보고 있고, 40대는 남자가 멜로물을 보면서 우는 설정이다.》
MBC 시트콤 ‘몽땅 내 사랑’에서 드라마 ‘욕망의 불똥’에 중독된 드라마 마니아로 나오는 김 집사(정호빈). 주인 김 원장(김갑수)에게 늘 구박받으면서도 드라마만은 ‘본방 사수’하는 김 집사는 다양한 이유로 드라마에 빠져드는 한국의 중년 남성들을 대변한다. MBC TV 화면 촬영
이렇듯 중년 남성들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가족 및 직장 동료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다. 회사원 엄정현 씨(41)는 “아내가 보니까 옆에서 같이 보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면 공통된 얘깃거리를 찾을 수 있어서 챙겨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엄 씨는 펀드매니저들을 다룬 ‘마이더스’나 요리사들 이야기인 ‘파스타’ 등 전문 직업 세계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한다. 드라마를 발원지로 하는 각종 화제를 따라잡고 있으면 직장에서도 “최근 트렌드를 꿰고 있는 쿨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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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성들의 드라마 시청을 사회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분석도 나온다.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 파워가 커지고 남자들의 마초 성향이 줄어들면서 콘텐츠 소비 성향도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밖에서는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스트레스를 받는 중년 남성들이 살벌한 현실에서 도피해 드라마에서 위안을 찾는다는 해석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막장 드라마의 온갖 극단적인 사례를 보면서 위안을 얻고, 현실과 달리 정의가 승리하는 줄거리를 보면서 상실감이나 박탈감을 해소할 수 있어 허구의 세계인 드라마에 중년 남성들이 빠져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동영 씨(45)는 누적 방문자 수가 30만 명이 넘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같은 글을 올렸다. “드라마에 나오는 자상한 남자들을 보면서 위기를 느낀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집안일을) 하기도 한다.… 아줌마들, 드라마 보는 남편을 구박하지 말라.”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